▲ 이가림 인하대 명예교수·시인
젊은날 고뇌와 희망이 시작되고
600년 은행나무가 버틴 '명륜뜰'
아름다운 숲·고즈넉한 돌담끼고
터벅터벅 걷던 '인사동 골목길'
친구와 막걸리에 엉망된채 귀가…
청춘의 열병앓던 추억들 새록새록


"목쉰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찢겨진 지성의 깃발을 펄럭이는 행진밖에/ 더 나아갈 길이 없었던/ 일그러진 풍경의 시커먼 거리/ 그 잿더미 속에서/ 상처 입은 날개 퍼덕이며 태어난/ 전후(戰後)의 새 몇 마리,/ 이끼 낀 명륜뜰/ 마지막 증언처럼/ 늘 그렇게 서 있는/ 은행나무 가지 위에/ 둥지를 틀었네."
-'우리들의 둥지'부분

서울에서의 내 젊은 날의 허기진 꿈과 방황과 좌절, 그리고 포기될 수 없는 희망을 담고 있는 듯해서 나의 졸시 '우리들의 둥지' 서두를 인용해 보았다. 내가 쓴 시 가운데, 서울의 동네 이름이나 거리 이름이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몇 편 있지만, 명륜동과 동숭동 일대, 창경궁 돌담길을 거쳐 인사동과 청진동 골목길에 얽힌 젊은 날의 불타는 고뇌와 갈증을 환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둥지'는 사제(私製) 추억의 한 장 사진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1962년 대학에 진학하게 됨으로써 유소년기를 보낸 전주를 떠나 서울 땅에 발을 디디게 된 나는 종로구 명륜동에 하숙방을 하나 얻어 지내다가 자취를 하는 것으로부터 팍팍한 객지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전차를 타고 명륜동에서 출발하여 종로를 거쳐 을지로, 청계천에 이르러 헌책방을 뒤지고 돌아다니다가, 자칭 삼총사 친구들을 불러내어 막걸리를 한 동이씩 마시고 어설픈 불어발음으로 프랑스 국가(國歌)인 '라 마르세예즈'를 몇 번이고 고래고래 부르며 남산 꼭대기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그때 무슨 이유로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를 혀 꼬부라진 소리로 외쳐 불렀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만주벌판에서 독립투쟁을 하던 독립군들이 시퍼런 한을 품고, 이 '마르세예즈'곡에 맞춰 독립군가를 불렀듯이, 끓어 넘치는 젊음의 열정과 불만을 그런 식으로 쏟아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구멍 뚫린 카키빛 작업복 주머니 속에 /등사판 잉크냄새 풍기는 교재를/ 세기아(世紀兒)처럼 꽂고 다니던 시절"('우리들의 둥지')이었으므로, 나 역시 '한 마리 성난 표범'이 되어 명륜시장 바닥이며 종로거리를 어슬렁거렸다. 물론 나는 프랑스어 실력을 충분히 쌓아가면서 외무고시 같은 것을 준비하여 외교관이 되어볼까 하는 제법 다부진 계획을 구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중급 프랑스어 문법 정도를 겨우 습득했을까 말까 했을 즈음, 시건방지게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며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 그리고 보들레르의 '악의 꽃' 등의 원서를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외우듯이 무턱대고 외워보겠다는 무모한 정열에 빠지게 되었다. 분수에 맞게 차근차근 따야 하는 학점 취득과는 관계없이 빠져든 이런 겉멋부리는 개인취향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다행히 상위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서울의 거리며 장소는 여러 군데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곳을 꼽으라고 하면, 나로서는 옛 성균관의 명륜 뜰을 우선 꼽게 된다. 요즈음은 가끔 거기서 전통 혼례식이 거행되기도 하는데, 600년도 더 묵은 은행나무가 여전히 울울창창 버티고 서 있는 그곳이 내 젊은 날의 고뇌와 희망의 출발점으로 나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또 창경궁 돌담을 끼고 돌아서 비원 앞을 거쳐 인사동과 청진동에 이르는 길도 빼놓을 수 없다. 그 길은 무엇보다 젊은 날의 내가 가장 많이 걸었던 길이기 때문이다. 파리의 뱅센느 숲에 비견될 만한 아름다운 숲이 보이는 고즈넉한 돌담을 끼고 터벅터벅 걸어서 인사동 골목길이나 청진동 해장국집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머리 속으로 얼마나 많이 희한한 삼단논법의 방파제를 세웠다가 허물곤 했었던가. 막걸리에 엉망으로 취하여 자취방으로 돌아올 때, 동급생 친구 녀석과 어깨동무를 한 채 사르트르의 '구토'가 아니라 셀린느의 속 뒤집히는 '구토'를 얼마나 많이 했었던가.

어언 반세기의 세월이 총알처럼 지나갔으나 요즘도 명륜동 근처나 창경궁 근처를 지날 때면 까닭모를 청춘의 열병을 앓던 내 20대 초반, 그 꿈과 야망에 몸부림치던 해맑은 눈망울의 초상이 불현듯 떠오르곤 한다. "알롱 장팡 들라 빠트리 ! 르 주르 드 글루와르 에 따리베! (나가자! 조국의 아들딸이여! 영광의 날이 왔도다!)"로 시작되는 피 끓는 전투적인 가사에 용기를 북돋우는 씩씩한 군대 행진곡 곡조로 되어 있는 '라 마르세예즈'를 소리 높이 부르면서 청춘의 깃발을 휘날리던 그 시절의 나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보기 위해 오늘은 명륜동으로 가봐야겠다.

/이가림 인하대 명예교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