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슬옹 세종대 겸임교수
임금침실 강녕전 지근거리 위치
양부일구·자격루 등 설계
조선 최고의 과학연구소 불구
현 정부 창조과학 발전 말하며
복원 방치… 한심하다 못해 참담
박 정부 묶인자물쇠 빨리 풀기를


대한민국 수도 중심부에 있는 경복궁 근정전 바로 뒤에 조선 임금들의 침실이었던 강녕전이 있고, 강녕전 가까운 곳에 '흠경각'이 있다. 세종이 밤낮으로 과학 연구에 몰입하기 위해 1438년에 세운 흠경각. 지금은 큰 자물쇠로 잠겨 있어 복원된 건물만이 침묵 속에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는 곳이다.

'흠경'이라는 이름은 유교의 5대 경전 가운데 하나인 '서경'에 "공경함을 하늘과 같이 하여, 백성에게 시간을  알려 준다[欽若昊天, 敬授人時]"는 말에서 따온 이름이다. 천문을 관찰하여 백성에게 시간을 알려 준다는 '관상수시(觀象授時)'는 임금의 가장 큰 책무였다. 세종은 바로 그 책무를 가장 충실하고 정확하게 지킨 임금이었다. 세종의 관상수시 정책의 핵심은 1434년에 제작한 앙부일구였고 역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여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킨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였다. 흠경각은 바로 자격루 시계를 중심으로 한 각종 천문 기계를 설치하고 세종이 수시로 드나들며 연구하던 곳이었다. 한밤중에도 시계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 궁녀들이 귀신 나오는 집이라고 쑥덕거렸다는 뒷이야기가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김돈이 정리한 흠경각기(세종실록)에 의하면 "대호군 장영실이 건설한 것이나 그 규모와 제도의 묘함은 모두 임금이 마련한 것"이라고 분명히 밝혀 세종이 직접 기획하고 설계에 참여하여 장영실로 하여금 세우게 한 조선 최고의 과학 연구소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부 설비를 복원하지 않은 흠경각은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 전문가이자 극작가인 신봉승은 2009년에 공개 칼럼에서 "<흠경각> 을 복원할 궁리도 못하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입에 담는 우리 정부의 몰지각은 한심하다 못해 참담하다는 생각이들 뿐이다(데일리안http://www.dailian.co.kr)."라고 질타한 적이 있다. 이러한 질타를 위정자들과 문화재청 관리들이 듣지 못해서인지 그로부터 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흠경각은 옛 영화를 그리워하며 자물쇠라는 포승줄에 묶여 분노의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흠경각 복원의 필요성은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통해 이해하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기술로도 놀라운 실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맡은 인형 하나가 붉은 비단옷 차림으로 산을 등지고 섰으며, 인형 무사 셋은 모두 갑옷 차림인데 하나는 종과 방망이를 잡고서 서쪽을 향해서 동쪽에 섰고, 하나는 북과 부채를 잡고 동쪽을 향해 서쪽에서 약간 북쪽으로 가까운 곳에 섰고, 하나는 징과 채찍을 잡고 동쪽을 향해서 서쪽에서 약간 남쪽으로 가까운 곳에 서 있어서, 매양 시간이 되면 시간을 맡은 인형이 종 치는 인형을 돌아보고, 종 치는 인형도 또한 시간을 맡은 인형을 돌아보면서 종을 치게 되며, 두 시간(경)마다 북과 부채를 잡은 인형이 북을 치고, 매점마다 징과 채를 잡은 인형은 징을 치는데, 서로 돌아보는 것은 종 치는 인형과 같으며, 경·점마다 북 치고 징 치는 수효는 모두 보통 시행하는 법과 같다."

기록의 일부만 봐도 이 정도다. 세종의 놀라운 과학 업적은 자동 시계 자격루가 발명된 세종 16년 1434년부터 훈민정음이 창제된 세종 25년인 1443년 사이 10년에 집중된다. 그 기간의 딱 중간 지점인 1438년에 온갖 과학 발명품을 집약시켜 집대성한 통합과학 연구소 흠경각이 세워진다. 흠경각은 민본주의와 과학과 문화의 꽃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다시 지금의 흠경각을 보라. 일제가 한국의 기를 죽이기 위해 박은 쇠말뚝 같은 묵중한 자물쇠를 박아 놓았다. 숨이 턱턱 막힌다.

최근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를 다녀왔다. 그들은 철저한 역사 유물 보존과 복원을 통해 진정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보여주고 가르쳐주고 있다. 그런 그들의 성실한 노력 덕에 관광객 폭주라는 경제 이익까지 얻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명백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조차 복원을 못하고 역사 유물의 가치를 한없이 떨어뜨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와 과학을 중요하게 여긴다니 지켜볼 일이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경복궁 안에 있는 흠경각을 제대로 복원하라. 흠경각은 세종의 철학과 과학, 민본주의 정치 이상과 현실의 결정체였다.

/김슬옹 세종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