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이후 처음으로 실질적 남북관계 개선의 끈이자 교두보 역할을 해온 개성공단이 가동 9년만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 성사 이후 화해 무드의 산물인 개성공단이 두동강 난 한민족의 통일을 향한 유일한 희망이자 대화창구였다. 그동안 정권이 바뀌면서 북한에 대한 퍼주기식 햇볕정책이란 비난도 감수해야 했고, 크고 작은 남북문제가 터질 때마다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생명이 볼모가 될 수 있다는 우려와 긴장감도 늘 상존해왔다. 실제로 지난 2009년 우리측 인원인 유성진씨를 북측이 억류하거나 2008년 금강산에서 남측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측 군인에 의해 피격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해 개성공단 체류 인원의 안전이 큰 이슈로 떠올라 남북관계를 급랭시키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남북간 충돌을 완화하는 완충지대 역할이 바로 개성공단이었다. 그만큼 개성공단은 정치적·외교적·국제적 위기상황에서도 신성불가침 구역이란 삼한시대 '소도'와도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돼 왔다. 물론 우리측과 북측의 경제적 실리 추구 계산법은 달랐다. 북측은 '통일을 염원하는 남조선 인민들과 한민족의 대동단결 차원의 통큰 양보'라는 주장을 계속해 왔고 우리측은 '북측의 경제개발에 대한 원조 차원의 기술인프라 지원'등의 명분을 내세웠다.

정치적·이념적 생각이 달라도 개성공단에는 남과 북 근로자들이 한 장소에서 일하고 분단된 한민족간 대화의 상시 물꼬가 이뤄지는 유일한 곳이기에 그 자체만으로 존재의 의미가 컸다.개성공단은 지난 2004년 6월 시범단지 9만3천㎡, 2005년 9월 본단지 1차 16만9천㎡, 2007년 6월 본단지 2차 175만㎡에 대한 분양이 이뤄졌다. 현재는 1단계 330만5천여㎡ 기반공사가 끝났으며 123개 기업이 입주해 우리측 근로자 475명이 체류중이고 북측 근로자 5만3천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북한은 북측 근로자 규모와 임금을 토대로 연간 9천만달러 이상을 확보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런 북한이 8일 오후 개성공단 가동 잠정 중단을 전격 통보하고 북한 근로자를 모두 철수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사태의 해결 실마리는 전적으로 우리측의 태도여하에 달려 있다고 해괴한 궤변도 부연했다. 개성공단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며 그곳을 볼모로 삼는 북한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