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코스닥시장에서 외국인 매수세가 강해지고 있다. 지난 3월 한 달 외국인 순매수액이 9년 만에 최고를 기록한 것이다. 코스닥 지수는 올 들어 12%나 상승, 미국 나스닥의 8.2%를 능가했다. 경쟁국들의 양적 완화와 북한변수로 코스피시장이 갈수록 활력을 잃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미국 실리콘벨리를 비롯한 글로벌 기술투자붐이 주목되는데 특히 기술력 있는 국내 벤처기업들이 포진한 코스닥시장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선을 끈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벤처붐이 또다시 불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 정책은 또 다른 호재였다. 창조경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육성하겠다는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여서 예단은 금물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후보시절 내내 '중기대통령'을 표방, 지난 3일에는 드디어 선물(?)보따리를 풀었다. 착한 천사투자를 활성화하고 대기업들의 기술탈취문제를 근절하며 공공조달에서는 신제품이 역차별 받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할 것을 관계기관에 지시한 것이다. 벤처기업가들의 가장 큰 애로인 투자자금의 조기회수 관련 세제지원도 언급했다.

근래 들어 고용없는 성장이 고착된 국내 실정을 감안할 때 중소벤처 창업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가 주목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벤처시장이 다시 가열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낙관은 금물이다. 그동안 국내 벤처생태계가 형편없이 나빠진 것이다. 벤처펀드 출자 등을 목적으로 적립할 때 감세혜택을 제공하는 '기술개발준비금 손금산입'과 '투융자손실준비금 손금산입'이 2007년에 없어진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2000년 벤처붐 당시에 마련했던 주식 양도차익 비과세 대상도 대폭 축소되었다. 덕분에 은행과 증권사 등은 벤처에 아예 눈길도 주지 않는다. 벤처기업이나 벤처펀드에 출자할 경우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출자액 소득공제' 비율도 엔젤투자를 뺀 나머지는 당초 30%에서 10%로 크게 축소되었다. 개인이 벤처캐피털에 출자해 확보한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비과세 규정마저 2009년에 없앴다. 정부가 세수확보에만 연연한 나머지 민간벤처 투자시장을 크게 위축시킨 것이다. 정치권도 벤처위축에 한 몫 거들었다. 스타트업 기업 및 벤처기업 전용 주식시장인 코넥스(KONEX) 신설과 대형 투자은행(IB) 육성 등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지난 2월 국회에서 좌절된 것이다. 5곳의 대형 증권사에 한해 투자은행 업무를 허용하고 건전성 감독을 완화해 주는 것은 극소수 금융재벌들의 배만 불릴 우려가 크다는 것이 이유이다.

자금난에 직면한 벤처기업들은 빈사지경이다. 핵심 자금조달창구인 자본시장마저 장기불황과 증시침체로 증자 혹은 회사채 발행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또한 은행들은 과잉유동성으로 대출처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음에도 벤처기업의 융자호소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말이다.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벤처타령을 늘어놓곤 했으나 모두 공염불이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한술 더 떴다. 올초 증권거래법과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금년 7월 이후 거래분부터 개인간 주식 장외거래내역을 세무당국에 제출할 것을 의무화했다. 주식을 장외에서 거래하면 상장, 비상장 구분 없이 거래대금의 0.5%를 거래세로, 매매차익의 10%를 양도소득세로 자진 납부해야 하는데 그동안에는 상당수 투자자들이 법을 준수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런데 새정부가 지난 2일부로 일정을 앞당김으로써 신분 노출을 꺼린 큰손들이 지난달부터 한꺼번에 장외시장 거래를 중단했다. 상당수 개미투자자들의 추후동참은 불문가지여서 벤처캐피탈들은 망연자실이다. 기존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함은 물론 향후 시드머니의 조달루트마저 봉쇄될 우려가 큰 것이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벤처환경을 더욱 척박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천재 한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리스크는 더욱 확대된 반면에 대박 기회는 현격히 축소되어 오히려 혈세에 기생하는 좀비벤처만 키우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