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퇴출과 경제난, 각종 대형 금융사고등으로 점철됐던 지난 한해.
실직자들은 거리에서 방황하고 생계를 걱정하는 서민들의 주름살은 깊게 패어만 간다.
그러나 역경에 굴하지 않고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의 일터를 지키며 새벽이 왔음을 알리는 사람들이 있다.
수원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과일장사를 하는 정문극씨(44·수원시 권선구 권선동). 새벽 5시에 출근, 입찰에 참여해 물건을 가져오고 소매상들에게 판매한 뒤 문닫고 귀가 하면 오후 9시가 된다. 하루 16시간의 노동력이 투여되는 숨가쁜 하루일과지만 짬짬이 틈을 내 무의탁 노인시설인 안산평화의 집과 정신지체아들이 수용돼 있는 안성 태규의 집을 찾는 숨은 '봉사꾼'이다.
“수박장사 하다보면 반년이 가고 귤장사 하다보면 1년이 간다”며 별다른 허영심에 젖을 시간조차 없다는 정씨의 소박한 새해 소망은 '노력한 만큼의 대가로 저축하며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남들이 자는 새벽 2시에 출근하는 서태문씨(53·수원시 장안구 서둔동). 환경미화원인 서씨는 자신의 관할구역 수원 매향동 일대가 모두 자신의 집뜰과 다름없다. 하루도 거름없이 쓰레기와 씨름하며 땀방울을 쏟아낸 세월이 벌써 10년. 두 자녀를 결혼시켰고 나머지 두명을 대학에 보내고 있다.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자식들 키운 보람에 감사하며 산다”는 서씨는 “열심히 일하는 한 남들처럼 구조조정의 염려가 없으니 안정적 직업 아니냐”며 현직에 자부심을 느낀단다.
열차의 도착과 출발을 감시하며 승객 안전을 책임지는 수원역 역무원 최선행씨(41)의 업무도 낮과 밤이 없다. 약속된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분·초를 다투며 열차의 선로를 안내해야 하기 때문. “남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열차와 승객간 관계를 맺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며 오늘도 열차 힘찬 출발을 호령하고 있다.
이들에게도 역시 불신이 팽배한 사회에서 '세상에 믿을 구석'은 없지만 한결같은 나름의 철학은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가 보장돼야만 바로 신뢰와 원칙이 통하는 사회가 이뤄질수 있다는 것.
아주대 김영래 교수(55)는 “만연된 도덕적 해이와 파편화된 개인주의 등으로 붕괴돼 버린 우리 사회의 신뢰회복은 이들처럼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서민들로부터 찾을수 있을 것”이라며 “사회지도층이 모범이 돼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를 인식하게 될때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삶의 공조가 이뤄질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崔佑寧기자·pangil@kyeongin.com
신뢰사회를 만드는 사람들
입력 200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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