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 동보아파트에 사는 김영근(31·회사원)씨는 요즘 전세금 2700만원을 날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99년 9월 주택은행으로부터 1000만원을 대출받아 동보건설과 전세계약을 맺었던 그는 작년 12월 28일 동보건설 파산소식을 접했다. 김씨는 "법원에 알아보니 전세금을 돌려받기 힘들 것이라 했다"며 ŕ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 대출금을 갚았는데 이제 어떻게 하나"라고 하소연했다.
이 아파트 1392가구 중 분양이 아닌 전세입주민은 636가구로, 모두 1200만~2700만원씩의 전세금이 동보건설에 묻혀 있다. 주민 송순정(38)씨는 "결혼 11년 만에 25평 아파트에 살게 됐다고 좋아했는데 이제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한 건설회사의 파산으로, 그 회사와 임대계약을 맺은 전국 4900여 가구가 입주보증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임대아파트 전문건설업체인 동보건설은 시흥, 화성, 춘천, 충주, 천안 등 전국 8개 지역에 아파트를 건설, 4934가구와 임대계약을 맺었다.
이들이 낸 입주보증금만 506억원. 동보건설 관계자는 "모두 11평, 14평, 18평 규모 서민아파트로 입주보증금은 가구당 1000만~2000만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지난 5일 오후 8시, 시흥 동보아파트 노인회관에는 400여명의 주민이 모여 대책회의를 가졌다. "큰 회사여서 믿고 들어왔는데 이게 무슨 꼴이냐." "어떻게 마련한 전세금인데,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해결책은 없었다. 최광식 임시대표는 "농성 등 실력행사를 고려중"이라 했다.
화성 동보아파트 주민 300여가구는 작년 말 대책위원회를 조직했다. 이 아파트 김종현 대책위원장은 "오는 10일쯤 8개 아파트 대표가 연대조직을 만들어 집단대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입주보증금을 되돌려 받을 가능성은 현행법상 희박하다. 건설회사(임대인)가 파산절차를 밟을 경우, 임대차보호법이 아닌 파산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집계된 동보건설의 부채는 3623억원에 이르지만 자산은 2876억원에 불과한 상태다.
입주보증금은 직원 임금, 조세, 공사대금, 근저당 설정자보다 배당순위가 밀리기 때문에 입주민들이 이를 되돌려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작년 말 진로종합건설의 파산으로 원주 등의 임대아파트 545가구가 입주보증금의 10분의 1도 채 돌려받지 못한 전례가 있다.
건설경기 악화로 비슷한 사태가 속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현행 파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파산법 전문가인 중앙대 전병서 교수는 "전세제도가 없는 일본의 파산법을 차용한 국내법이 현실과 유리돼 있다"며 "서민 입주보증금에 배당우선순위를 주는 법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동보건설 파산관재인(파산관재인)으로 선정된 법무법인 '내일'의 정태상 변호사는 "입주민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지만 마땅한 보호장치가 없다"고 말했다. <연합>연합>
동보건설 파산으로 임대아파트 서민 위기
입력 2001-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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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1-0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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