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수 중앙대교수·문학평론가
해마다 돌아오는 '4·19'
의례적 기념행사로 되풀이 될뿐
자유를 갈망하던 정신 점점 퇴색
신자유주의 깃발아래
'자유'라는 가치는
생명력을 잃은지 오래다


대학 시절, 봄이 오면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엘리엇의 '황무지'의 한 구절을 입버릇처럼 되뇌곤 했을 정도로 나는 봄을 심하게 앓았다. 아마도 입학과 동시에 최루가스 가득한 캠퍼스에서 내가 꿈꾸던 대학과 현실의 대학 사이의 거리를 절감해야 했고, 내내 그 사이에서 서성여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며 이십대를 보낸 나는 삼십대 초반까지도 봄이면 늘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곤 했던 것 같다. 이제 그 시절과 제법 거리를 둘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내게 봄이라는 계절은 아픔을 동반하고 온다. 그래도 작년에는 얼굴을 바꾸며 피는 꽃들을 바라보며 짧은 봄을 만끽했던 것도 같은데, 올 봄은 유독 날씨도 변덕스럽고 안팎으로 어수선해서인지 꽃을 볼 마음의 여유도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요즘은 늘 배낭을 메고 걸어서 출퇴근을 하는데, 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고개를 쏙 내민 민들레와 제비꽃을 만났다. 세상은 뒤숭숭하지만 봄이라는 계절은 어김없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제비꽃과 민들레와 눈을 맞추다가 그 주변에 하늘빛 기운을 머금은 채 한 무더기 피어 있는 꽃마리를 보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다. 잠시 숨이 쉬어졌다. 어느새 4월이었고 세상은 여전히 잔인했지만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대학 시절의 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이성복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의 맨 앞에 실려 있던 '1959년'이라는 시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봄은 오지 않았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당시 많은 이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봄은 오지 않았다"라는 구절은 그 자체로는 논리적 모순을 가진 문장이지만,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에게는 그 구절이 직관적으로 단번에 이해되었다. 1960년 4월의 봄을 떠올리면 '1959년'이라는 이성복 시의 제목이 얼마나 절묘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더구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은 이 시를 읽으며 1980년 5월의 잔혹한 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복숭아나무는/채 꽃 피기 전에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불임(不姙)의 살구나무는 시들어"가는 저 절망적인 분위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에 가득한 무기력하고 절망적이고 병적인 분위기가 그 시절의 문학도들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어떤/놀라움도 우리를 무기력(無氣力)과 불감증(不感症)으로부터/불러내지 못했"던 시절, 절망은 습관이 되어 갔고 소리 없이 "구둣발에 짓이겨"지는 것은 어머니와 여동생의 기쁨만이 아니었다. 그 시절에 "보이지 않는 감옥(監獄)으로 자진해 갔"던 '우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4·19는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오지만 의례적인 기념행사들이 되풀이될 뿐 자유를 갈망하고 구가했던 4·19의 정신은 점점 퇴색해 가고 있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부러워하던/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던 김수영의 시는 아직 사랑받고 있지만 "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혁명은/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푸른 하늘을') 우리 시대는 잊은 지 오래인 것 같다. 4·19의 정신은 이제 대학가에서도 박제화 되어 역사책 속에 갇혀 버렸고, 의례적인 4·19 기념행사 속에서 잠시 소환되어 기억될 뿐이다. 역사가 되어버린 과거만이 전통으로 계승될 뿐 그것이 오늘을 추동하는 힘이 되지는 못한다. '혁명'이라는 말은 자기계발서 속에서 소비될 뿐이고 '자유'라는 가치는 신자유주의의 깃발 아래 생명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속 대사를 빌려 말한다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정규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자발적 노예'가 되어 가고 있는 우리들의 영혼은 안녕한가. 자연을 닦달해 개발했듯이 자신을 닦달해 계발하지 않으면 낙오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지배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자유'를 구가하기 위해 치른 희생이 어떤 것이며 그렇게 해서 얻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공감을 얻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길들여진 영혼은 자유라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제 정말 안녕이라는 듯이/4월의 눈이 내린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저 눈이 그치고 나면 우리에게도 봄이 올까? "전 생애를 낭비"하지 않고도 "우리는 우리의 리듬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하재연, '4월 이야기')날 수 있을까?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며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다.

/이경수 중앙대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