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행색의 허생에게 1만냥을
꿔줄 정도로 인색하지 않았다
돈이 많은 부자이건 상인이건
그들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
더 소중한 '신의'를 택했던것
며칠 전에는 학회의 큰 행사를 앞두고 식당에 예약하러 갔다. 늘 다니는 곳이라 아무 걱정도 않고 예약을 하러 간 것이다. 그 식당은 날마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학교 인근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집이다. 예상치 않게 행사가 있는 토요일의 경우 단체손님에게는 소고기만 판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평소에 먹던 삼겹살 정도면 많은 회원들이 저녁 한 끼로 적당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간 나는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 집으로 학회준비를 하던 학생들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신발을 잃어버리고 슬리퍼를 끌고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물론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듣질 못했다. 어이가 없지만 무슨 말을 한다는 게 귀찮기도 하고 갈 곳도 마땅치 않아 남들 따라 그 집에 오늘도 드나들고 있다.
과연 이런 일들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인가. 과거로부터 있었던 일이며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먼저 경제관련 학자들의 견해에 주목할 수 있다. 우주과학자 홍대용은 노동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양반들도 생산활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촉구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홍대용은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한다 해도 진실로 의리를 먼저 하고 이익을 뒤로 해야 한다"고 했다. 선박통상으로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경제학자 이중환조차도 갑자기 거부가 되고 지나치게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대부가 이런 짓을 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이익을 얻어 관혼상제의 비용에 대비하면 해로울 것이 뭐 있겠느냐"고 말한 바 있다. 실학자 이익, 정약용 등은 물론이요 심지어 김옥균 같은 급진개화파의 인물도 마찬가지로 경제에서 의리가 먼저임을 역설했다.
학자들의 주장만이 아니었다. 실천적인 삶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바람직한 방향을 시사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경주 최부잣집은 1년에 1만 석 이상 모으지 마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 사지 마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 없게 하라는 등의 가훈이 있었기에 12대 300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박지원이 지은 '열하일기'에 나오는 조선 최고의 부자 변승업의 조부는 거지 차림의 허생에게 1만 냥을 선뜻 꿔 줄 정도로 타인에게 인색하지 않았다. 돈이 많은 부자든 상인이든 그들에게 돈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더 소중한 것은 '신의'였던 것이다. 한양 종로에 있던 육의전의 상인사회에는 독특한 문화가 계승되고 있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단골손님의 명부인 '복첩'을 넘겨주는 것으로 가정경영권이 이양되었다. 따라서 상인들은 복첩을 조상의 신주단지 모시듯 극진히 받들었다. 육의전의 규모는 가게의 크기나 거래의 빈도로 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오래된 단골손님을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 즉 복첩의 두께로 가늠했다. 육의전에서 이렇듯 신용을 복이라 했으니, 경제에서의 '신의'의 위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인간의 정직성과 순수성이 훼손되는 점을 경계했던 한국인의 정신을 엿보게 되며, 경제를 포함하는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윤리성을 중시하는 한국문화적 특성을 확인하게 된다.
몇 년 전 통계에 따르면 아시아 10여개 국가의 외국출신 기업인들이 체감하는 한국의 부정부패 정도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2007년 홍콩소재 위험컨설팅회사 정치경제위험자문공사(PERC)가 발표한 아시아 부패인식도 조사에 의한 청렴도 순위를 보면 중국이 7위, 한국이 8위였다. 가장 청렴한 곳은 싱가포르였고, 일본은 홍콩에 밀려 3위로 떨어졌으며, 가장 부패한 국가는 조사대상 13개국 중 13위인 필리핀이었다.
희망은 있다. 10여 년 전 전경련에서는 경영윤리시찰단을 미국에 보낸 바 있다. 이윤보다 사람을 배려하는 새로운 윤리가 어떻게 안착되고 있는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케임브리지대 장하준(경제학) 교수가 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2010년 말 5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것도 경제에서 요구되는 도덕성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학자들은 속깊은 인간관계와 집단적 생존만이 기업에서 이기는 길이라는 '새로운 윤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화형 경희대 중앙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