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인수 서울본부장
뉴스를 생산하는 입장에서도 요즈음 신문 읽기는 고통이다. 좋은 소식이 별로 없다. 가까스로 내각을 구성한 박근혜 정부는 국제외교의 시험대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다.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앞두고 있지만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에 대한 미국측의 입장은 완고하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권한을 인정해달라는 우리 정부의 요청에 정색을 하면서 반대하고 있다. 일본은 엔화를 무차별로 쏟아부으면서 한국의 수출경제를 목조르는 것도 모자라 각료와 의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보란듯이 참배해 대한민국을 모욕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결렬되고 한·중·일 정상회담도 불투명해졌다. 북한은 미국과 중국의 조정결과를 지켜보며 사태를 관망중이지만 수틀리면 언제든지 한반도 긴장조성에 나설 것이다. 중심을 잃고 헤매다간 우리 뜻과는 상관없는 우발적 위기가 언제 한반도를 강타할 지 모르는 형세다.

국내로 시각을 돌려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창조경제는 원론 수준을 맴돌 뿐 각론 진입이 요원하다. 한 시사평론가는 "박근혜의 창조경제, 안철수의 새정치, 김정은의 생각을 아무도 모르는 세가지"라 농을 던졌다. 박근혜정부의 경제 철학이 벌써 희롱의 대상이 됐다니 이만한 낭패가 없다. 문제는 우리 경제에 창조적인 기운 대신 모든 경제주체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거나 관망하거나 규탄하는 이기적 기운이 싹트는데 있다. 재벌들은 계열사간 거래규제에 반발하거나 자세를 낮추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지하세원 발굴 의지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청년 백수들은 정년연장 추진에 울화통을 터트린다. 6억 이하 집 한채 못팔아 안달이던 사람들은 한숨 돌렸지만, 그 이상인 사람들은 "6억원으로 떨어질 때 까지 손가락 빨고 살아야 하느냐"고 원망이 늘어진다. 아파트 한채로 중산층이라 자위했던 세월들이 허망할 뿐이다.

안팎의 불안한 기미 탓인가. 모두 제 앞가림에 급급하다. 대기업들은 대통령 앞에서 대규모 투자를 운운하지만 실제 금고 안에 쟁여 넣어 둔 현금을 선뜻 풀 태세는 아니다. 오히려 엔화 공습에 대비해 국내 투자 보다는 해외 투자로 자금을 돌릴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예측이 현실화된다면 국내 일자리는 그 만큼 줄어들게 된다. 소비자들도 지갑을 닫았다. 현재의 불경기가 내일 개선될 조짐이 없으니 지출을 줄이고 보자는 심산이다. 서민 뿐 아니다. 명품 시장에도 서리가 내렸다니 심각하다. 세금은 생산과 소비에서 발생한다. 제조업 가동률이 추락하고 소비시장이 얼어붙었으니 세금이 제대로 걷힐리 없다. 지하경제를 뒤진다지만 애먼 자영업자들만 들볶을까 걱정이다. 시중에서 급속히 사라지고 있는 5만원권은 가진 자들의 저항을 보여준다. 이제 시작하려는 이런저런 복지정책에만도 돈이 모자란 형편이다. 복지정책이 지속가능성이 깨지면 그 때는 감당할 수 없는 내부 갈등이 폭발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현실이다.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에 심리적 비무장지대를 설정해야 한다. 정치권은 위기극복을 위한 중대현안들은 정쟁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기업과 노조도 비무장지대에서 허심탄회하게 공존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시민사회단체들도 우호적인 계층과 세대만을 대변하는 단견에서 벗어나 공동체 전체의 운명으로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 우리 내부의 비무장지대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각자 짊어져야 할 인내와 희생을 자임해야 한다. 덕수궁 대한문 앞 화단을 아무리 짓밟아봐야 일자리와 빵이 생기지 않는다.

졸렬한 민족의 위기는 이기를 낳는다. 이기가 다시 위기를 증폭시키는 악순환에 빠진다. 하지만 위대한 민족의 위기는 이타를 낳는다. 이타심으로 위기를 전환시켜 기회의 문을 여는 기적을 이룬다. 이미 1998년 환란시절 금모으기로 기적을 경험한 우리다. 다시 기회의 문을 열어야 할 위기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어떻게 할 것인가.

/윤인수 서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