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공무원 L씨는 전국적으로 폭설이 내렸던 지난 7일 버스를 타고 지방에서 올라오면서 곧 시와 구에 '비상'이 걸리겠거니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러나 폭설로 인해 교통대란이 일어났음에도 불구, 재난관련부서와 도로과 등 일부 부서만 분주하게 움직였을 뿐 아무런 상황도 하달되지 않았다. 임명직 단체장 시절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L씨의 얘기.
 지난 12일 민원 때문에 시청을 찾은 정모씨(32)는 민원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가 애를 먹었다. 주차장에 쌓인 눈을 치우지 않아 차를 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김씨는 경비실에서 삽을 빌려 눈을 치운 뒤 가까스로 빠져나갔다.
 “최소한 민원인들이 많이 찾는 주차장의 눈쯤은 미리 치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씨는 “지방자치가 도입된지 6년째 접어들고 있지만 시민을 대하는 공무원의 마인드는 물론 지방행정 전체적으로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비난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부활하면서 지방행정은 많은 부분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시민들은 정씨처럼 그런 성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같은 문제는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김대중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 시·도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2000년도 지방자치단체 평가결과 보고회'에서도 잘 나타난다. 평가결과에 따르면 자치단체 주요시책 전반에 대한 주민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평균 5.12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책별로는 ▲공무원 친절성, 민원업무 처리시간 등 일반행정 혁신부문 5.86점 ▲장애인시설, 보건소서비스, 수돗물 관리 등 복지·환경개선 부문 4.97점 ▲소방시설 및 재해관리, 시설물 안전관리 등 주민안전관리 부문 4.83점 ▲지방도로관리, 문화기반시설, 옥외광고물 관리 등 지역개발 확충 부문 4.67점 ▲산업유치지원·공공근로사업 등 지역경제 진흥부문 4.25점 등이었다. 거의 모든 평가지표에서 '낙제점'을 받은 셈.
 지방재정이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자치단체장들이 세수증대보다는 주민들에게 선심을 베풀기에 급급한 결과 재정운영이 불건전해졌고, 자치단체장의 인사권 전횡과 지방행정의 과도한 정치화로 지방자치제도의 본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처럼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지방자치제를 개선하기위한 가장 시급한 방안으로 전문가들은 자치행정의 책임성 확보를 꼽고 있다. 인하대 이기우교수는 지난해 12월 27일 열린 '지방자치제도 개선 국민대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자치행정 책임성 확보 차원에서 주민소환제를 도입하되 제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태를 방지하기위해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민들의 참여가 풀뿌리 민주주의 성공의 관건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동구의회 김회창전문위원은 “현 지방자치는 주민자치 구현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주민의견 수렴, 주민발의, 주민주도사업의 추진방식이 전무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주민들이 주민자치센터 등 자치단체 프로그램에 주도권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林星勳기자·ho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