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은 자신을 좋아했던 한 무제가 이릉을 변호했다는 이유로 선택하게 한 세 가지 즉 사형, 벌금 오십만전, 그리고 거세형 중 거세형을 선택했다. 하급 관리인 탓에 벌금은 무리였고, 아버지 사마담의 유언은 지엄했기 때문이다. 하여 이름 난 효자인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이미 사마담이 그 기초를 세워놓은 역사서인, 130여편 52만6천500자의 '태사공기(太史公記·약칭 사기(史記))'의 완성과 한 무제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살아 치욕을 감수했다.
굳이 아놀드 토인비나 카아를 들출 필요도 없이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현재의 눈으로 과거와 화해하여 미래를 그려가는 도전과 응전, 내 삶의 추진력의 산물'이다. 소급하면 일만년의 환인·환웅 시대의 선사는 물론이요, 단군조선 이후의 우리의 역사에도 그와 같은 도전과 응전, 그리고 민족의 동력원으로 추진체는 페달을 밟아왔다.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통찰하여 고금의 변화에 능동적인 패러다임을 갖고자 한 사마천에게 치욕스런 거세형도 의지를 각인시킨 한 과정이었듯이, 내 나라의 역사는 가장 성공한 자의 지름길인 자신의 존재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역사는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의 청소년들이 우리의 역사를, 환인과 환웅의 선사까지 적용하면 일만년의 우리 역사를, 아니 그렇게 멀게 갈 것도 없이 가까운 근현대사도 전혀 모른다.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잘 살다가 뒈진 다섯 대신들, 즉 을사오적(박제순·이지용·이근택·권중현·이완용)은 다 모른다 하여도, 대표적인 친일 매국노인 이완용을 물어보는 질문에서 '독립군 아니었나?'라고 대답하는 고교생과 대학생들이 있었다. 이쯤 되면 이 나라에 교육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더이상의 질문은 무의미하다. 역사는 민족 국가의 동질성만을 낳는 모멘텀(Momentum)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역사를 배우는 일은 '한국인인 나의 입장에서 내 나라의 역사를 알아 세계무대에 도전하고 응전하며 세계와 나의 상호작용을 찾는 지혜와 용기를 얻는 일'이다.
고등학교 교육 과정의 집중이수제로 인해 소홀히 다뤄지는 '역사교육'을 되살려야 한다. 내 나라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나의 자아와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는 까닭이다. 다른 나라 청소년들처럼 자국의 역사를 모르면 상급학교 진학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정도가 아닐지라도 괜찮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우리 교육에서 홀대받고 있는 역사교육을 복원해 상당수 청소년들이 더이상 '국사발달지체저능아(?)' 로 전락하는 사태를 방관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이청연 인천시자원봉사센터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