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위해 신뢰이용 거짓은 잘못"
아이들 "심심해서 속이게 만들고
소년마음 못 헤아려준 어른 잘못"
팽팽한 주장이었지만 승패 떠나
많은대화 자체가 '모두의 승리'
2013년 4월 20일. 서울 구로도서관(관장·이명하)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어른과 초등 5·6학년 아이들의 4대4로 이루어진 작은 토론대회가 있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부모였으므로 부모와 아이들과의 토론인 셈이다. 주제는 양치기 소년 이야기에서 소년의 거짓말이 과연 나쁜가, 아니면 어른들의 책임이 더 큰가였다. 사회는 글쓴이가 봤다. 미처 녹음을 하지 못해 전반적인 흐름을 글쓴이가 재구성해 보았다.
먼저 각자 소년을 지지하는 쪽과 어른을 지지하는 쪽의 근거를 모두 써보는 시간을 가졌다. 좀 더 합리적인 생각과 토론을 위해 각자의 의견이나 주장과 관계없이 대립된 논점을 모두 정리하고 생각해 본 것이다. 마지막 토론에서 어른들은 "아무튼 소년의 거짓말은 잘못됐다"는 쪽에 섰고 아이들은 "소년의 거짓말보다 어른들의 잘못이 더 크다"는 쪽에 섰다.
아이들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어린 소년에게 늑대가 나타날 수 있는 위험한 곳에서 양을 돌보도록 한 것은 어른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른들은 늑대가 나타나면 어른들이 바로 달려가서 구해줄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린 소년이 심심하지 않도록 친구와 함께 양을 돌보거나 무섭지 않도록 어른과 함께 양을 돌보게 했어야 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어른들은 그보다 더 힘든 일을 해야 하므로 그나마 쉬운 일에 속하는 양 돌보기를 소년에게 맡긴 것이고 다른 소년소녀들도 그 당시에는 각자 자기의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아이들은 어린 소년이 늑대와 마주쳤을 때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평소에 비상 연락체계나 안전망을 구축해 두어야 하는데 그렇게 안한 것은 어른의 잘못이라고 되받았다. 이에 대해 어른들은 그 당시에는 전화나 119같은 비상망이 없었으므로 소년을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어른들이 있었으므로 소년이 거짓말만 안 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토론은 백중지세였다. 어른들은 원래 거짓말은 나쁘다고 강조했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심심한 상황에서 거짓말 놀이를 할 수밖에 없는 소년의 마음을 왜 헤아리지 못하느냐고 맞받았다. 하지만 어른들은 본인의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남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소년의 태도는 나쁘며 본인의 재미를 위해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이용했으므로 나쁘다고 꾸짖듯이 말했다. 이에 대해 아이들은 기죽지 않고 신뢰가 중요하지만 소년의 입장에서는 신뢰보다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는 것이 더 절박한 문제였다고 보았다. 또 소년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 어른들이 야속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았다.
마지막 쐐기는 아이들이 박았다. 소년의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른들 잘못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었다. 아주 심심해서 거짓말을 하게 만든 것도 어른이고 소년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도 어른들 아니냐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주장과는 관계없이 팀별 입장을 대변하는 토론이었기에 최종 자기 생각을 쓰는 논술문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한 어린이는 토론 훈련을 위해 어른들의 의견을 일일이 반박했지만 자신은 소년의 거짓말은 어쨌거나 나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아무리 심심했어도 마을 사람들을 속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심함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른들의 반성도 있었다. 양치기 소년이 나쁜 목적을 가지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기에 이해하고 소년을 끝까지 돌보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년이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은 그만큼 평소 소년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였음이 분명하므로 어른들이 많이 반성해야 한다고 적었다.
토론의 전반적인 흐름은 백중지세였으므로 심사위원은 나이가 적어도 한참 적은 아이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승패를 떠나 부모님들과 그 자녀들이 마주 앉아 인류의 고전인 옛 이야기로 풍성한 대화를 나눈 것 자체가 모두의 승리였다.
/김슬옹 세종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