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인가 싶더니만 벌써 5월이다. 천지가 푸르다 못해 찬란한 빛을 발하는 5월은 자연 그대로의 축복임을 느끼게 한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은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래서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대학가에서는 봄 축제가 펼쳐진다. 땅 속에서 솟아오르는 기운이 온 천지를 흔들어놓는 듯하다. 꽃을 시샘하는 꽃샘 추위의 봄과 지루한 여름의 사이에 있는 달이니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이다. 5월은 우리말로 '다섯'이니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닫고 서다(閉, 立)'의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성인의 날 등 좋은 날이 많다. 그래서 5월을 또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반면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깐깐 5월, 미끈 6월,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 하면서 5월을 깐깐하다고 했다. 음력을 얘기하는 것이지만 어떻든 농촌에서의 5월은 이것 저것 챙길 것이 많은 달이다. 보리는 파랗게 익어가는 보릿고개인데다 모판에는 볏모가 푸른 빛으로 자라 가뜩이나 부족한 일손을 기다린다. 눈코뜰 새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얼마 있으면 라일락과 아카시아 꽃의 향기는 이제 콧 속을 마비시킬 기세다. 봄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한 불우헌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이라도 흥얼거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산과 들로 뛰쳐나가 마음껏 봄의 계절을 만끽하고 싶은 게 모두의 심정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5월이 왔지만 주변의 상황은 영 봄같지가 않다. 봄이 왔나 하고 외투를 벗어놨다가 다시 주워 입곤 하는 변덕스런 날씨랄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것 같다. 봄은 왔으되, 봄같지 않은 요즈음이다. 대학가에는 지난 해에 이어 어김없이 축제가 이어지지만 학교 밖에서는 청년실업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달 통계청이 집계한 3월의 20대 취업자 숫자가 작년에 비해 10만명 이상 줄어들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20대가 학교나 학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청년실업의 악순환이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청년층의 취업이 3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점을 감안하면 청년실업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제자들의 일자리를 하나라도 만들어보기 위해 요즘의 대학가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그러나 학교 측의 쉴새 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문을 나선 졸업생들의 반응은 너무도 시큰둥하다. 취업에 대한 절박함이 없다. 물론 본인이 만족해 하고, 꼭 하고 싶은 일이 아니어서인지는 몰라도 위험스러울 정도로 태연하다. 여기에는 부모의 책임도 일부 있다. 한 둘밖에 없는 자녀가 힘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곳에 취업하기보다는 좋은 직장을 구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생계비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캥거루족을 양산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개성공단은 북한의 일방적인 통보로 폐쇄의 수순을 밟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춘래불사춘의 형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한 안보 불안은 가뜩이나 침체된 경기를 위축시키고 있다. 엔저 정책으로 인한 대일 수출감소는 현저하게 나타나 우리 기업들의 피해는 예상보다 크다고 한다. 개성공단에서 나타난 피해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민생경제 대통령, 한반도 평화 대통령이 됨으로써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던 박근혜 정부도 출범 2달 만에 첩첩산중의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봄이 왔음은 고사하고 경제 한파가 더욱 깊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를 지경이다. 계절은 봄인데 봄같지가 않다고 하는 넋두리도 이제는 무책임한 말일 뿐이다. 봄을 만드는 것은 우리들의 손에 달렸다. 우리의 봄이 언제 올 것인가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한 종합대책을 제시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줘야 한다. 이로써 기업과 가계에 긍정 마인드가 확산되면 국민경제의 봄소식은 자연스레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을 진정한 축제로 즐겨보자는 것이다.

/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교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