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평론가
국민들의 관심은 정치권내부
정치적 이해득실 계산에 의한
볼썽사나운 이합집산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익을 반영하고
갈등을 표출해서 집약하는
새로운 정당체제 개편이다


대의민주주의는 정당정치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정당의 기율이 다르고, 태생적 차이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현대정치의 경향 중 뚜렷한 흐름 중 하나가 정당정치의 퇴조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는 한 정당을 빼고 정치를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당이 국가와 시민사회의 가교 역할을 하고, 국민의 이익을 표출, 집약함으로써 정책을 수립한다는 정당이론의 원론적 측면과 시민사회의 균열을 조직화 해야 한다는 당위적 측면이 아니더라도 정당의 역할은 그래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그 정당이 위기다. 그래서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와 정당정치의 위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책임성이다. 정책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고, 국민의 대표로서 자신에게 위임된 권력에 대해 반응하고 설명해야 할 의무이다. 정당정치를 책임정치라 하는 이유이다.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이 확립되고 난 이후, 역대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하곤 임기말에 예외없이 자신이 속한 집권당에서 탈당했다.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은 비중의 차이는 있으나, 후보자 요인과 정당지지가 결합한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정당정치적 관점이다. 그러나 자신을 공천한 정당을 탈당한다는 것은 적어도 정치이론적으로 볼 때 설명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현실정치에서 예외없이 반복되는 이러한 정치관행은 한국정치에서 책임정치가 실종되는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모습이다. 대통령의 임기 초에 집권당이 청와대의 위세에 눌려 정당으로서의 위상과 역할에 소홀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임기초 대선 패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정당의 모습도 여전하다. 국민의 선택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기는 대통령이나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들이나 같은 무게로 인식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많은 권한이 집중되어 '제왕적 대통령'의 수사를 달고 다니는 한국의 대통령제는 정당마저 위축시키고 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김한길 의원을 새 대표로 선출하고, 4명의 최고위원과 함께 단일성 집단지도체제의 닻을 올렸다. 대선 패배의 여진이 강력하게 남아있고, 당내의 폐쇄적이고 기득권에 집착하는 계파가 적대적으로 존재하는 민주당을 여하히 환골탈태(換骨奪胎)할 것인가가 민주당의 새 지도부에게 주어진 임무다. 김한길 대표는 상향식 공천을 도입할 것과 당원들의 정당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김한길 의원의 대표 선출은 친노를 중심으로 하는 범주류가 강력히 존재해도 대선패배에 친노가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폭넓게 확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며 이것이 당심이다. 민주당은 전당대회에서 나타난 민심과 당심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127석은 결코 적은 의석이 아니다. 비록 최근의 4·24 재보궐선거에서 완패했지만 더 이상 민주당은 물러설 곳이 없다. 10월의 재보선에서도 현재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민주당은 당의 간판을 내려야 한다. 이번 전대가 기사회생할 수 있는 모멘텀으로 기능하지 않으면 야권의 지각 변동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내년의 지방선거가 야권 뿐만 아니라 여야 정치권의 권력구도를 바꿔 놓을 수 있다. 단순히 광역단체장과 지방의원의 당선 숫자에 의한 정치공학적 승패가 아닌, 정치권의 지형 자체가 바뀔 개연성이 크다.

국민의 관심은 정치권 내부의 이합집산이 아니다. 바람직한 지각 변동은 선거 전후 나타나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 득실 계산에 의한 볼썽사나운 '헤쳐모여'가 아니라, 국민들의 이익을 반영하고, 갈등을 조직화해내서 담아내는 새로운 정당체제의 개편이다. 정치권과 항간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정치지형의 변화 담론이 '그들만의 리그'로 그쳐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10월의 재보선은 제도권 정치에 진입한 '초선 거물' 안철수와 민주당이 경쟁하는 첫 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과 '안철수 현상'은 경쟁적 협력관계에서 적대적 갈등관계로 얼마든지 전화(轉化)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관계가 무엇이든 국민들의 이해를 조직화해내지 못하고, 의미있는 갈등들을 표출해서 집약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이든, 안철수든 정치를 구성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의 변수일 뿐이다. 야당이 건강해야 정치가 산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