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옥자 경기시민사회포럼 공동대표
불안전한 일자리와 청년실업
한집건너 한집 조기퇴직자 자영업
빚권하는 사회가 몰고온 가계부채
소득60% 주거비로 쓰는 월세살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교육비 등
벼랑끝에 선 790만가구 한계가족


가족 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이미지가 있다. 따뜻함, 푸근함, 안락, 평화, 이해, 수용 그 밖에도 편안함을 주는 느낌이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그곳, 따뜻한 밥과 사랑이 있는 곳, 언제까지 나를 기다려 줄 것처럼 여겨지는 마지막 그곳이 가족이 주는 느낌이다. 코와 입매가 닮은 사람들이 된장 한 뚝배기에 반찬 한두 가지, 밥 한공기로도 풍족함을 느끼는 것이 가족이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가족을 담고 있는 그릇, 가정이 한계상황에 와있다. 문제는 그 한계가 쉬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김광수 경제연구소에서는 현재 한국 경제 상황 속에서 가족이 겪고 있는 문제를 사례와 함께 분석한 '한계가족'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지금 경제 침체 혹은 경제 위기 상황이 정부가 분석하고 내놓는 현실보다는 훨씬 심각하게 가정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 분석을 근거로 2인 이상 가구의 23.5%인 310만 가구는 월 소득보다 지출이 많으며, 이 적자 가구에 속하는 가구원수는 906만명에 이른다고 분석하고 있다. 바로 310만에 달하는 적자 가구가 벼랑 끝에 서 있는 '한계가족'이라고 이 책은 설명한다. 또 비록 적자 상태는 아니지만 언제라도 한 걸음만 밀리면 벼랑 끝에 서게 될 가구 수도 480만 가구에 달하는데 이 가족 역시 시간이 지나면 벼랑 끝으로 내몰릴 위험이 매우 큰 한계가족 예비군으로 분류한다. 결국 한국경제 전체로 보면 한계가족은 전체 60%에 달하는 790만 가구에 이른다는 지적이다. 우리가족은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며칠 전 나는 87세 한 노인을 만나 그분의 어려움을 들었다.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결혼하였으나 일찍 사별하고 대학에서 시간 강사를 하면서 알뜰살뜰 모아 일산에 아파트를 한 채 장만하였다고 한다. 전 재산이 이집 한 채인 이 노인은 추후 더 작은 집으로 옮기면서 차액으로 살다가 역모기지로 남은 생을 살거라는 소박한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분양가에서 2억원 이상 집값이 하락한 지금 집을 팔아 은행 빚을 갚고 나면 살 곳은 물론 당장 몸 의탁할 곳이 없다고 한다.

점심시간에 모여 앉은 직원들은 대부분 40대로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맞벌이 여성들이다. 빚 이야기가 나오니 빚없는 사람이 없다. 대부분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받은 융자빚으로 벌써 몇 년째 이자만 갚고 있는데 그 액수가 급여액의 약 30% 정도라고 한다. 아이 교육비와 약간의 부모 용돈을 제하고 나면 한달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

졸업한지 3년이나 된 제자가 찾아왔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가 이제는 어디라도 취직하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겨우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5년째 사귀어 온 여친과도 정리하고 3포(결혼포기, 취업포기, 출산포기)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취직해서 부모님을 도와드리겠다는 꿈은 그냥 꿈이 되고 학자금 융자마저 고스란히 허리 휜 시골 아버지 몫이라고 허허롭게 웃는다.

이들이 요즘 한국사회의 보통 가족이 처한 현실이고, 전형적인 한계가족 모습이다. 불안전한 일자리와 청년 실업, 조기 퇴직이 불러온 한집 건너 한집 자영업자의 현실, 자고 나면 오르는 생활 물가, 빚 권하는 사회가 몰고 온 가계부채, 소득의 60%를 주거비로 지출할 수밖에 없는 월세살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교육비 문제, 노후 준비도 못하고 맞이한 현재 100세 시대의 노인의 삶이 한계가족 양산 현실이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사회는 가족이 처한 현실을 각 가족의 문제로 보고 거기서 대안을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답이 안 보인다.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 가족이 처한 현실이 한국사회의 분배구조가 만들어 낸 결과라는 점이다. 그래서 분배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한계가족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나마 한계가족 예비군마저 한계가족으로 편입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가족이 처한 현실이 아프다. 누구나 땀 흘려 최선을 다해 일하면 최소한 가족의 삶을 유지하는 평균적인 삶은 유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도 욕심일까?

/한옥자 경기시민사회포럼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