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로운 역할에는 '벤처기업'이 가장 적임자이다. 벤처는 혁신성으로 무장하여 신(新)성장동력에 도전하는 기업군으로서, 창조 개념과 가장 잘 어울리는 기업유형이다. 벤처가 본연의 능력만 발휘한다면 창조경제의 견인차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창조경제를 선도하는 애플, 페이스북, 구글 등과 같은 신흥 강자들 모두 벤처 출신인 것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선진경제에서는 벤처가 창조경제의 첨병으로 자리매김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벤처의 중요성이 재인식되었지만, 우리 벤처가 이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 아직 미지수이다. 양적으로 보면 벤처기업은 3만개에 육박할 정도로 확대되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벤처 출신의 일류 기업은 아직 없는 실정이고, 또한 벤처생태계 조건도 좀처럼 기대하는 모습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뒤돌아보면 우리 벤처 영역은 적지 않게 변질되어 왔다. 현재 벤처기업 중, 과연 혁신 역량 측면에서 손색이 없는 기업이 어느 정도 되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 점이 바로 한국벤처에 '리셋' 수준의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여기서 '리셋'은 컴퓨터를 초기화하듯이, 초기 벤처의 원형으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달리 표현하면 창조적 기술로 무장하고 도전정신이 충만한 기업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며, 또 이를 통해 벤처기업군을 진정 창조경제를 견인하는 기업모델로 만들자는 제안이다.
벤처 리셋의 출발은 무엇보다 벤처의 인증기준을 높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벤처 타이틀을 얻었지만 혁신능력은 약한 소위 '무늬만 벤처'를 제외시킬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벤처 브랜드에 '명품 혁신기업'으로서 차별적 위상을 주고, 벤처가 되는 문턱에 엄격한 인증기준을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벤처의 차별화' 조치는 외형상 벤처기업의 수를 줄이게 될 것이지만, 일류 혁신기업의 표본을 설정하는 의미가 크다. 이렇게 벤처를 차별적 기업군으로 만드는 것은 한국경제에서 결코 작은 의미가 아니다. 특히 우량 종(種)을 선별해서 벤처라는 브랜드를 주고 그들을 '특별하게' 대접하는 방안은 창조적 기업이란 무엇인가를 확고하게 보여주는 효과를 낼 것으로 믿는다. 또한 선별 문턱은 엄격하게 관리하지만 일단 선별된 벤처기업에는 필요한 지원을 과감하게 제공하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일류를 일류로 선별하는 기준이 있어야 하며, 그 일류에 대해서는 과감한 지원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경제에서 우량 벤처기업이 부족한 이유에는 벤처정책이 그동안 시혜성 입장을 취했던 탓이 있다. 물론 일반 중소기업에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시혜성 입장이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벤처에 이런 시혜성 입장을 가질 필요는 없다. 벤처는 새로운 먹거리를 개척하는 기업 유형이므로, 성장의 견인차로서 치열한 경쟁력을 갖도록 유인해야 한다.
벤처가 혁신 중소기업의 선도 종(種)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갑을(甲乙)관계 문제도 많이 해결될 수 있다. 관행처럼 굳어진 하청관계가 변하려면, 슈퍼 갑(甲)으로 행세하는 대기업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있는 우량 을(乙)에서부터 도전이 시작되어야 한다. 벤처가 그 우월한 을로서 거래 관행의 변화를 주도한다면, 한국 경제생태계에서 새로운 대·중소기업간 거래 모델이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창조경제의 새 주역인 벤처의 '재탄생'에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