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
제자들이 사회 곳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해 주는 스승이야말로
우리시대 모두가 존경하고
기대하는 스승상이 아닐까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매년 돌아오는 스승의 날이지만 올해는 감회가 새로웠다. 40년만에 만나본 고교 은사로부터 배운 깨달음과 감사함, 그리고 소중한 추억 때문이다.

작년 12월 어느 날, 지방에 계신 은퇴하신 노학자이자 고교시절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필자가 G20 농업장관회의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기사(Chevalier) 훈장을 받았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연락한 것이다. 제자에게 축하하면서 꼭 서울에 올라와 당시 담임으로 근무했던 학급 학생들을 초대하여 식사자리를 만들겠다고 하셨다. 까까머리 고교생들이 이제 다 늙고 은퇴하는 시기이지만 그래도 불러놓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셨다. 스승보다 더 나이든 제자들도 많아보였으나 모처럼 스승님을 모시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주옥같은 소중한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시다. "자네들을 담임하던 시절에 내 역량의 90%를 말썽 부리는 제자들 지도하는데 쏟았다. 자네 같은 학생들에게는 10% 정도밖에 쏟지 못했다", "이 나라 민주화와 산업화의 역군들에게 우리가 너무 소홀한 것 같다"는 등 많은 말씀을 하셨다. 특히 학창시절에 애를 먹이는 친구들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일일이 근황을 물어보시는 제자 사랑에 감동을 받았다.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줄 것을 부탁하시는 선생님을 뒤에 두고 꼭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섰다. 며칠 후 선생님께서 최근 쓴 책도 보내오셨다. 영문학자의 글로벌 문화체험담인데 동서양의 문화 차이가 우리에게 어떻게 접목되고 활용되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도 활발한 활동을 하며 제자들에게 깨우침을 주시는 모습에 많은 것을 느꼈다.

다산 정약용은 20년의 유배생활 중 많은 젊은이들과 사제의 인연을 맺었는데, 특히 황상(黃裳)이라는 애제자가 있었다. 황상은 스승에게 "저는 첫째로 머리가 둔하고, 둘째로 앞뒤가 막혀 답답하며, 셋째로 이해력이 부족합니다"라고 호소한다. 정약용은 제자에게 삼근계(三勤戒), 즉 세 가지가 부지런하면 된다는 가르침을 써준다. "배우는 사람은 보통 세 가지 큰 문제가 있다. 첫째, 빨리 외우면 재주만 믿고 공부를 소홀히 한다. 둘째, 글재주가 좋으면 속도는 빠르지만 글이 부실해진다. 셋째, 이해가 빠르면 깨우친 것을 대충 넘기고 곱씹지 않으니 깊이가 없다." 황상은 스승이 적어준 '삼근계'를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보고 또 보면서 평생 실천했다고 전해진다.

황상은 평생 스승을 지극정성으로 모셨을 뿐만 아니라 스승이 죽은 뒤에도 예를 다했다. 감동한 정약용의 아들들은 두 집안의 후손 간에 대대로 우의를 다지자고 약속하는 '정황계안(丁黃契案)'을 만든다. 황상은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지만 정약용의 아들을 통해 황상의 시가 주류 시단에 알려지게 된다. 세월을 뛰어넘은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미담이다.

진정한 스승상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첫째 조건이 아닐까. 은사의 저녁 초대와 보내온 책자의 내용, 한류열풍, 한국 음식 등을 생각하면서 진정한 스승상을 생각해본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은 쪽에서 나온 빛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은 것을 비유한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제자도 스승의 제자사랑과 배려는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40년전 제자의 사회활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우리의 스승이다. 제자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해주는 스승이야말로 우리 시대 모두가 존경하고 기대하는 스승상이 아닐까. 자기가 가르친 제자들이 사회 곳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뻐하는 것이 스승이다. 자신이 챙기지 못했던 못난 제자들도 그리워하는 것이 스승의 모습이다. 스승의 날을 보내며 오랜 세월 한결 같은 스승의 사랑에 다시 한 번 고개가 숙여진다.

/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