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수 중앙대 교수·문학평론가
다큐 영화 '비념'을 보고나면
제주를 상징하는 감귤나무가
4·3항쟁 학살 현장임을 알게 돼
눈길 걸어가는 발자국 인상깊어
망각의 역사속에 묻힌 원혼들
'우리의 상처'로 자각하길 원해


지난 금요일 박찬욱·박찬경 감독의 각별한 후의에 힘입어 광화문에 위치한 독립영화전용관에서 학생들과 함께 '비념'을 볼 수 있었다. 1948년 제주도에서 벌어진 4·3항쟁과 오늘날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강정 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을 함께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비념'은 한 판의 시굿과도 같은 영화였다. 제주도의 역사 속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긴 도입부를 시작으로, 영화는 관광지 제주도에 봉인된 학살의 현장을 따라가며 4·3항쟁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강정 마을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다시 도민들 간의 갈등이 심해진 오늘의 상황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영화 속에서 절제되어 있지만 비좁은 방안에 4·3항쟁 때 죽은 젊은 남편의 사진을 모셔두고 사는 강상희 할머니의 모습에서 제주도민들이 걸어왔을 고통의 시간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여백이 많고 불친절한 영화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제주도를 지나간 아픈 역사를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서 아픈 역사가 계속되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이 영화의 포스터에는 제주를 상징하는 감귤나무가 아름답게 찍혀 있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그것이 바로 4·3항쟁 때의 학살의 현장이었음을 알게 된다. 지금도 제주도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양지이자 관광지로 사랑받고 있지만 여행객으로 제주도를 찾아드는 이들에게 제주도의 아픈 역사는 대개 망각되거나 '그들'의 역사로 치부되곤 한다. 때마침 연달아 개봉한 영화 '지슬'과 '비념'은 지난 시대의 역사를 망각에서 끌어올려 아직 애도의 시간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기억하고 치유해야 할 상처가 무엇인지 직시하게 하고, 그것이 결코 '그들'만의 상처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상처임을 자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비념'은 지금, 여기에 꼭 필요한 영화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임흥순 감독이 밝힌 것처럼 '비념'은 제주도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의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영화였다.

'비념'은 제주도로 진입해 들어가는 과정에 많은 공을 들인다. 눈길을 걸어가는 발자국을 클로즈업한 장면의 이미지는 강렬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에도 저마다 발자국이 찍히게 된다. 저 발자국은 망각의 역사 속에 묻힌 원혼들의 것이자 애도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관객들의 것이다. 제주도로 진입하는 길을 길게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는 관객들과 함께 영화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그 다소 길게 느껴지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당신은 이 세계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세계를 마주볼 준비가 정말 되어 있는가? 들어가는 발자국은 있지만 걸어 나오는 발자국은 없는 것도 감독의 의도였을 것이다. 이것은 영화 속 세계가 아니며 제주도만의 일이 아님을, 그러므로 그곳에서 누구도 걸어 나올 수 없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임흥순 감독은 4·3항쟁 당시의 학살의 현장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강상희 할머니를 비롯해 그곳에서 만난 제주도민들을 인터뷰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최소한으로 담아내며 살아남은 이들보다는 학살된 이들의 흔적을 담아내고자 애쓴다. 영화의 제목을 '비념'이라고 지은 데서도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달래고 해원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느껴진다. '비념'은 '빌고 바란다'는 의미를 지니는 말로 제주도에서 무당 한 사람이 요령을 흔들며 기원하는 작은 규모의 굿을 가리킨다고 한다. 임흥순 감독이 영화 '비념'을 통해 들려주는 요령 소리는 4·3항쟁 때 학살된 사람들과 그들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의 마음에 울려 퍼지고, 더 나아가 강정 마을의 주민들에게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로 울려 퍼진다.

영화 속에 매우 인상적으로 삽입되어 있는, 오사카에서 2인 극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일조선인 극단 '항로'의 극중극은 일본어로 말하는 남성과 제주도 방언으로 말하는 여성이 번갈아 말하다가 그들의 목소리가 중첩되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4·3을 겪은 이들의 상처가 오롯이 전해지고 또한 치유됨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러므로 영화를 본 관객들이 극장 밖으로 나서는 순간, 진정한 애도의 시간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일찍이 이영광 시인이 예견했듯이, "이것은 소름끼치는 그림자,/그림자처럼 홀쭉한 몸/유령은 도처에 있"으니까. "사방에서/천천히,/문득,/당신을 통과해"(유령 1)가는 유령을 응시할 준비가 우리는 되어 있는가? "그건 오래된 이야기"가 아님을, "나라도,/법도, 무너진 집들도 씌어진 적 없었던 옛적"(오래된 이야기)의 이야기가 아님을 진은영 시인도 노래하지 않았던가.

/이경수 중앙대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