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화형 경희대 중앙도서관장
세상의 모든것에 대해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탄력적이고 지혜롭게
창조적 시각으로 접근
열정과 패기로 무장
각자 길을 만들어가야


요즈음 우리 학교의 주요 회의와 행사가 열리는 곳에 가면 눈에 띄는 것이 '길'이다. 가지 않은 길, 미래의 길, 대학의 길, 배움의 길 등 과거 여느 때와 달리 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되어 참 좋다. 길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노라면 무엇보다 조선 최고의 지리학자였던 신경준이 "길에는 주인이 없다. 그 위를 가는 사람이 주인일 뿐이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 각자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창조적인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고정된 관점에서 벗어나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객관적 대상들은 독자적으로 의미나 가치를 지니기보다 인간에 의해 판단되고 결정된다. 더욱이 대상으로서의 모든 사실, 사물, 현상 등은 반드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변하기 때문에 가치판단의 주체인 인간의 탄력적이며 지혜로운 시각이 절실히 요청된다.

심지어 고정된 사물이나 현상이라 할지라도 관점을 달리하여 생각하면 새로운 모습과 가치를 창조해낼 수 있다. 참신한 시각이 없을 때 모든 사물과 현상은 단지 존재할 뿐 의미와 가치를 드러내지 못할 것이며, 물질문명과 정신문화가 진보는커녕 정체되다 못해 퇴보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백남준의 작품은 폐물이 된 모니터에 생동감 있는 영상을 결합시켜 새로운 구성과 형태로 창조됨으로써 생명이 부여되었다. 그는 평범을 비범으로 만들고 못쓰게 된 물건을 주옥과 같은 예술품으로 전환시키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예술과 과학이 하나가 되어 감동을 넘어선 충격을 주는 것은 관점의 차이가 이끌어낸 성과이자 가치의 창조임에 틀림없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저 유명한 화가 고흐도 생전에는 '붉은 포도밭'이라는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았을 뿐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해바라기'는 3천600만 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그것은 그의 그림이 변해서가 아니라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사람들이 참신한 시각에서 그의 그림을 바라보지 못했기에 고흐는 생전에 불우한 삶을 살다 간 것이다.

일찍이 가난 극복을 주요 과제로 삼았던 연암 박지원은 관념적 논의에 머물던 사대부들의 학문풍토를 뒤로 하고 청나라의 수도 연경을 다녀왔다. 기와조각이나 벽돌에서부터 도로나 수레 등에 이르기까지 편리하게 정돈된 청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은 그는 조선 선비들 사이에 유행하던 소중화주의나 북벌론 등 청나라 배척의 위선을 꼬집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이용후생의 학문을 주장했다.

그는 벼재배와 누에치기 등에서 실용적 농법을 시도했고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는 청나라의 시장과 상업, 건축과 공업 등 선진적인 분야에서 필요한 것은 빠뜨리지 않고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위국애민의 정신이 투철했던 조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마침내 온갖 기술이 정교해지면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 수 있고 군대를 강력하게 만들 수 있으며 백성을 잘 살고 장수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거중기를 만들고 화성을 축조하였다.

인간의 행복은 다양한 분야에서 구현될 수 있다. 특히 위와 같은 예술이나 과학 등에 의하여 행복이 뒷받침될 수 있는 오늘날 사회에서 미학적이며 실용적인 결과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막중하다. 무릇 이런 성과와 진보는 인간사회의 복지화를 선도하는 근간이 되고, 마침내 인류의 소망이라 할 수 있는 고도의 문화세계창조에 기여하게 된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새로운 인문정신을 계발하고 끊임없이 과학문명을 발전시키려는 우리들의 진지한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가장 성공한 한상(韓商)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승은호 코린도그룹 회장은 수 년 전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의 해법을 성장 동력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운영하는 그룹에서 30여명의 한국 대학생을 채용한 뒤 현장경험을 위해 벌목현장에 배치했지만 2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다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지금 외국에서 성공한 한상은 열정과 패기로 어려움에 도전했던 사람들이다.

새로운 시각과 창조적인 사고의 길에는 더욱 열정과 패기의 치열함이 요구될 것이다.


/이화형 경희대 중앙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