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세요'란 의미로 중국인들이 요즘 가장 많이 쓰는 인사말이다. 모든 이들이 친소(親疎)를 불문하고 상대방에게 건네는 덕담인 것이다. 1970년대만 해도 '식사하셨어요?'를 뜻하는 '치판레마(吃飯了 )'가 일반적이었는데 중국경제가 상당히 성장했다는 방증이다.
국내적으로도 '부자 되세요'란 표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새해맞이 인사로 특히 압권인데 젊은층일수록 많이 사용하는 추세이다. 부자는 저승사자(?)까지 부릴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부(富)야말로 현대판 로망이자 메시아인 것이다. 부자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블룸버그는 올해도 어김없이 세계 10대 거부들을 선정했는데 1위는 멕시코의 통신재벌인 카를로스 슬림이다. 1940년에 레바논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슬림은 26세에 부친에게서 받은 40만달러로 사업에 착수해서 세계에서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이 되었다.
기부천사 빌 게이츠가 2위, 스페인 국적의 인디텍스 회장 아만시오 오르테가가 3위를 기록했다. 오르테가는 가난한 철도원의 아들로 태어나 13세부터 셔츠가게 사환으로 사업과 인연을 맺은 이래 자수성가해서 패스트패션 브랜드 '자라(ZARA)'를 세계 1위로 키웠다.
4위인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은 1956년에 단돈 100달러로 주식투자에 나서 미국최고의 갑부로 등극했으며 자린고비로 유명한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는 17세에 사업계에 투신한 이래 조립식(DIY) 가구 생산으로 5위에 올랐다. 코크인더스트리즈의 코크형제가 각각 6위와 7위, 시스템 개발업체인 오라클의 창업자 래리 엘리슨이 8위를 기록했다.
'루이비통'으로 유명한 프랑스 LVMH의 창업자 베르나르 아르노와 미국 최대 할인매장인 월마트의 상속녀 크리스틴 월튼이 각각 9위와 10위에 랭크되었는데 세계 10대 거부들 중 골드스푼을 들고 태어난 경우는 미국 석유재벌 코크형제와 크리스틴 월튼 등 3명에 불과하다. 세계최고부자의 70%가 당대에 세계정상의 거부로 등극한 것이다.
일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확인된다. 유니클로의 창업자 야나이 타다시는 1984년에 부친이 운영하던 양복점 점원으로 출발해서 티셔츠를 팔아 일본최고의 부자로 부상했다. 주류메이커 산토리의 3세 오너 노부타다 사지가 2위, 한국계 교포 3세이자 소프트뱅크 창업자인 손정의가 3위를 기록했다.
4위인 히로시 미키타니는 1997년에 엠디엠을 창업해서 일본최대의 인터넷쇼핑몰인 라쿠텐으로 성장시킨 이력의 소유자이다. 게임재벌 산쿄의 설립자 쿠니오 부수지마가 5위, 모리트러스트의 아키라 모리가 6위를 기록했으며 일본 파친코업계의 대부이자 역시 재일교포인 한창우가 8위에 랭크되어 있다. 일본 10대 부자 중 부를 상속한 경우는 산토리의 노부타다와 일본 부동산 거물인 모리 아키라(6위) 등 2명에 불과하다. 일본 최고부자 10명 중 8명이 당대에 치부한 것이다.
일본을 비롯한 세계는 앙트레프리너(혁신적 기업가)들에겐 여전히 신천지인 것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재벌알리미 CEO Score는 국내 10대 부자로 삼성 이건희 홍라희 회장부부, 현대자동차 총수 정몽구·의선 부자, 서경배 태평양 오너와 롯데그룹의 신동빈·동주 형제, 이재현 CJ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 등을 거명했다. 삼성과 현대그룹 설립자의 직계후손들이 각각 3명이고 롯데가 2명을 기록했다. 최태원은 SK그룹 창업자 최종현의, 서경배는 태평양화학 창업자 서성환의 직계비속이다.
국내에는 자수성가를 통해 당대에 '탑10'에 진입한 경우는 단 한 명도 없다. 최고부자 순위를 50위까지 확대해도 세습부자 비중은 무려 78%에 달해 세계는 물론 일본의 60%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과거보다 대물림 부자비중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중산층이 빠르게 엷어지는 것은 설상가상이다. 한국은 더 이상 기회의 땅이 아닌 것이다. 민초들의 '부자 되세요'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