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지위 당사자들은
불공정 거래로 고통받는
'을'처지나 입장 생각해 보고
사회전체에 이익 돌아 가게끔
공정한 경쟁 분위기 만들어야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는 속담으로, 맹자(孟子)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 말인데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생활 주변에서 역지사지를 느낄 때가 많다. 역지사지는 우리 주변에 전철이나 대중시설 이용시에 많이 느낀다. 특히 운전하는 경우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느끼겠지만 상대방의 끼어들기나 과속에는 화가 치밀지만, 내가 끼어들 때는 내가 사정이 있는데 그걸 이해 못하나?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통신호표지판에 '양보'라는 표지판이 있는데 사실 별로 신경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층간 소음을 다루는 TV프로그램이 소개된 적이 있는데 아이들의 쿵쿵 뛰는 소리에 잠을 못 이루는 아래층 할머니와, 자녀들을 아파트 실내에서 마음껏 못 뛰게 하는 마음이 못내 아쉬운 위층 젊은 부부가 갈등을 겪는 상황이었다. 아이들 쿵쿵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시끄러운 아이들이 손자들같이 얼마나 귀여운지 서로 확인한 후에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인데, 역시 이웃 간에도 역지사지의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전통적 경제학에서 인간은 이기적이며 합리적인 경제행위를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에 심리학의 개념을 도입한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은 감정적 경제 행위를 하며, 강한 상호성이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고, 비협력적이라면 나도 협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지사지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최근의 남양유업 등의 대리점에 대한 밀어내기 등의 사태에서 보듯이 역지사지의 정신을 고려하지 않고 힘없는 개별 대리점에게만 재고 부담을 전가시킨다면 물류비용 절감의 단기적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밀어내기만이 주요 비용 절감 수단이 되어 기업의 경쟁력이 점차 약해지고 중간 유통 업체의 붕괴 등 사회 전체의 후생을 감소시키게 된다.
도모노 노리오가 쓴 행동경제학이라는 책에서는 평판이나 명성이 경제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반대로 얘기하면 기업들이 악평이 나면 이익이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협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의 남양유업과 배상면주가 등 여러 불공정 사례에서도 문제의 대기업들의 사회적 부도덕에 대한 방송과 인터넷의 공개와 악평들 때문에 결국 대국민 사과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 사례에서도 사회와 시장의 강제성에 의해서도 역지사지 정신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고질적인 대기업들의 불공정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강력한 처벌 규정도 필요하지만 역지사지의 마음, 즉, 상대방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누가 먼저 상대방의 처지나 입장을 이해하여야 하는가? 간혹 '갑'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들이 '을'에게 오히려 상대방의 처지나 입장을 이해하라고 강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역지사지의 기준은 무엇인가? 우선 개인 기업이나 특정 당사자만의 이익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되어야 하며, 사회적 약자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회 전체에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풍토를 조성하고, 긍정적인 평판이 있는 기업들이 장기적인 이익이 더 극대화된다는 것을 기업 스스로가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이제 치열한 경쟁 환경하에서 대기업 등 독과점 지위의 사업자 등 '갑'의 위치에 있는 당사자들은 기업 평판이나 파트너인 중소기업 등 기업의 외부 환경요소를 기업 경영전략의 중요한 변수로 취급하여야 한다. 우리는 독과점적인 우월적 지위 남용에 따른 피해를 역사적으로 익히 잘 알고 있다. 공정한 경쟁과 경제민주화는 경제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반드시 이익이 돌아온다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합의와 신념으로 더 이상 불공정 거래로 고충을 받는 '을'들이 없기를 바란다.
/김순홍 인천대 무역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