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천 화재참사 당시 4대의 소방헬기가 공중에서 3t의 물폭탄을 연속으로 투하하고 40여대의 소방차가 창고 주변을 빙 둘러 3만5천여t의 물을 뿌렸지만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이 정도 양이면 인구 20만명 도시의 하루 물 소비량과 동일하다.

이처럼 막대한 소방수를 사용하고도 진화가 어려웠던 이유는 창고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가연성 샌드위치 패널 때문이다.

두 장의 철판으로 스티로폼 또는 우레탄 등의 심재(心材)를 앞 뒤로 감싼 제품의 특징으로 물을 뿌려도 닿지 않는다. 여기에 타들어가는 속도는 난연 제품의 3배 이상이다.

이천 화재참사와 같은 해 발생, 720억원의 재산피해를 낸 서이천 화재사고의 경우, 창고 건물 2층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는 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창고 화재가 특히 위험한 건 유해가스로 인한 질식과 건물 붕괴에 따른 2차 피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연소 과정에서 유독가스인 시안화수소(HCN)와 일산화탄소(CO)가 스티로폼의 경우 각각 최대 438PPM와 353PPM, 우레탄의 경우 각각 1천40PPM, 1천661PPM이 방출됐다.

시안화수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에 사용된 유독가스로 알려져 있고, 일산화탄소는 연탄가스의 주 성분으로 인체에 치명적이다. 서이천 화재 당시 신고자가 창고 안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기도 했다.

건물 붕괴 역시 심각하다.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의 목숨을 앗아간 창고는 가연성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일 가까이 불이 꺼지지 않고 있는 안성 창고화재 현장 역시 건물구조물 진단 결과, 소방대원의 진입금지 명령이 떨어진 상태다. 심재가 탄 샌드위치 패널이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 경기도내 도농복합지역 창고 건물의 주재료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가연성 샌드위치 패널은 화재 사고에 쉽게 노출돼 있다. 사진은 가연성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광주시 도척면 추곡리의 한 창고건물./임열수기자
이런 '화약고' 창고가 도내 도처에 널렸다. 여기에 도로에는 접해 있지만 상대적으로 지가가 싼 외곽에 세우다 보니 관할 소방대와 수㎞ 떨어지거나 좁은 진입로로 초기 대응을 어렵게 한다.

가연제품을 사용하는 건 그만큼 자재비를 아낄 수 있어서다. 한국감정원의 2010년 건물신축 단가표를 보면, 1㎡당 패널 단가는 가연(스티로롬) 패널이 1만8천원, 난연 패널이 2만3천500원, 불연(그라스울) 패널이 3만4천원이다.

1천㎡짜리를 짓는다고 가정할 때 가연제품을 사용하면 불연 패널을 사용할 때보다 1천600만원 이득이다.

주요 국가들의 경우 가연제품보다 난연 이상의 제품을 주로 사용한다. 한국내화건축자재협회는 화재 안전의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된 유럽의 경우 불연 패널이 단열재 시장의 60%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까다롭기까지 하다. 일부 가연제품은 원칙적으로 사용을 금지시키고 있다. 난연 성능이 확인되면 A~C까지 3등급화해 B등급 이상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가연제품의 수요가 미미하고,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가연제품을 사용한 건물 외관에는 내장재 표시마크를 부착하도록 조례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내화건축자재협회 관계자는 "건축주의 인식과 전문성 부족으로 안전보다는 값이 싼 자재를 선호한다"며 "또 건축재료를 대부분 건축사·설계사·시공사들이 고르는데 공사비를 가급적 저렴하게 산출할 목적으로 가연제품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김민욱·강기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