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의 새로운 명물인 심청각은 소설 심청전과 그 근원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관광콘텐츠이다. 맹인 심학규의 딸 심청은 아버지가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면 눈을 뜨게 해주겠다는 화주승의 말을 믿고 시주 약속 때문에 중국 뱃사람들의 제물로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용왕의 도움으로 용궁에서 죽은 어머니를 만나고 연꽃으로 피어나 인간계로 환생하여 황후가 되고, 맹인잔치를 베풀어 재회한 아버지가 소원대로 눈을 뜨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백령도의 심청각은 효행으로 맹인이 눈을 뜨게 된다는 맹인개안(盲人開眼)이야기를 강조하여 심청이 바다에 몸을 던지는 모습의 조형물을 세우고 전시실에는 여러 효자효녀 관련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심청각의 콘텐츠는 효행의 교훈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여운은 적었다. 그것은 심청설화의 중요한 모티브인 해저 세계를 다녀온 용궁설화(龍宮說話), 그리고 저승으로 갔던 사람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는 환생설화(幻生說話)를 간과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백령도가 가진 스토리텔링 자원은 신라 진성여왕 때의 괴물 퇴치담인 거타지(居陀知) 설화와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되는 작제건(作帝建) 설화이다. 거타지 설화는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거타지는 신라 진성여왕 때 사신으로 당나라로 가던 아찬 양패의 호위 무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신라 사신 일행이 당나라로 가던 중 풍랑이 심해져서 백령도(鵠島)에 머물고 있던 중 서해의 해신인 '약'(若)이 승려의 꼴을 한 괴물에게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거타지는 해신을 죽이려는 사미승을 쏘아 죽인다. 해신은 은혜의 보답으로 딸을 꽃으로 변신하게 해 거타지에게 준다. 당나라에서 무사히 돌아온 거타지는 해신이 준 꽃을 사람으로 변신시켜 아내로 맞이하여 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거타지 설화는 고려 태조 왕건의 가문설화인 작제건 설화의 모티브와 흡사하다. '고려사'의 고려세계(高麗世系)에는 왕건의 조상인 작제건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작제건은 활을 잘 쏘았는데, 상선을 타고 가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서해의 용왕이라는 노인을 만났다. 용왕은 여래불(如來佛)로 변장한 요괴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작제건은 용왕의 요청으로 한 늙은 여우를 쏘아 죽인다. 용왕은 그 보답으로 딸을 주어 작제건은 용왕의 딸에게 장가를 들었다. 승려를 가장한 요괴의 등장, 그로 인해 곤경에 빠진 해신이나 용왕, 요괴 퇴치의 보답으로 꽃으로 변신한 딸을 준다는 이야기는 작제건 설화가 거타지 설화와 뿌리가 같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 두 설화에 나타나는 공통요소들, 위기에 처한 용왕이나 해신이 등장하고, 꽃을 통해 여인이 환생한다는 이야기는 다시 심청전(설화)으로 이어지고 있다. 백령도는 이들 설화의 원형에 해당하는 거타지 설화를 주목하고 백령도의 스토리로 가꿔 나갈 필요가 있다.
이들 위기 극복의 설화가 모두 아름다운 백령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지금은 백령도가 분단의 볼모가 되어 남북대결의 높은 파고에 흔들리고 있지만, 거타지와 작제건, 심청과 같은 설화 속의 주인공들이 커다란 위기를 타개한 것처럼 남북의 대결, 서해 도서들이 겪고 있는 위기가 예술인들이 백령도에서 발신하는 평화의 메시지로 극복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고 보면 서해를 지켜주는 신들은 더 있다. 강화도 바람의 신 손돌, 연평도 조기잡이의 신인 임경업, 덕적군도 새우잡이의 신 망구할매 등과 같은 서해의 여러 해신들도 다시 살펴봐야 하겠다.
/김창수 객원논설위원,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