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민 새우젓반입 거부사태
상인회·어촌계 '감정의 골'
'공유수면 매립' 보상대립
좌판 운영문제 폐장 위기
지나친 반목 '품질 저하로'
소래포구 물양장이 조성된 것은 지난 1975년. 1974년 인천내항이 준공되면서 이곳에 새우잡이 소형 어선의 출입이 어려워졌고, 이 배들이 소래포구에 정착하게 됐다.
한산했던 소래포구는 이때부터 새우파시로 부상한다. 이후 1985년 어민과 상인들이 매립한 땅이 국유지(논현동 111의168)로 등록된다. 이 때만 해도 어민들과 상인들 간의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상인들 대부분이 어민들과 친척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좌판 사용 등을 놓고 앙금이 생겼고, 상인들이 외지산 젓갈을 반입하면서 갈등이 표출됐다.
┃표 참조
1990년 10월께 어민들은 외지 새우젓 반입을 허용할 수 없다며 상인들의 물양장 진입 자체를 막았던 일이 있었다. 이때부터 상인과 어민 간의 관계가 멀어졌다.
이 일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소래포구에서는 소래산 해산물을 맛보기 어렵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소래어촌계 관계자는 "상인회에서 소래어민들이 잡아온 해산물을 20% 정도 밖에 사용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어촌계는 다른 지역에 해산물을 공급하고, 상인들은 해당 지역에서 해산물을 사오는 이상한 구조가 있다"고 말했다.
1991년에는 한국화약(現 한화)이 이 일대 445만5천㎡에 대한 공유수면매립허가를 받으면서 또 한 번 갈등이 빚어졌다.
어민들은 이로 인해 어로 행위가 불가능해졌다며 격렬한 집회를 벌이기 시작했다. 상인들도 보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고, 보상을 둘러싸고 상인들 간의 이견이 생겼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가스공사 LNG기지와 관련한 보상으로 인한 상인간의 갈등도 있었다고 한다.
이 당시 집회현장을 담당했던 한 경찰은 "당시 보상으로 인해 상인·어민 갈등이 벌어지고, 상인 간에도 갈등이 빚어지면서 대단했다"며 "지금까지도 앙금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큰 갈등이었다"고 설명했다.
1세대 상인회에서 간부로 활동했던 한 상인은 "원래 187명이던 상인번영회가 축소되기 시작한 것은 보상 문제 때문이었다. 대부분 어민들 친척이었다. 각서까지 쓰고 이들이 어촌계 상인회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1993년도에는 상인들과 어촌계가 좌판 운영권을 놓고 맞서면서 소래포구 어시장이 20일 동안 폐장되는 일이 있기도 했다.
또 한 번 상인들 사이에 큰 분열이 일어난 것은 지난 2004년. 이 당시에는 전대·전매 문제가 불거졌다. 소래포구어시장을 자신의 땅이라고 생각하는 1세대 상인들 가운데 일부가 수억원을 받고 좌판을 판 것이다.
A 상인회 회장은 "전매·전대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했고, 문제가 불거졌다"며 "이로 인해 많은 상인들이 번영회를 떠났는데도 요즘 다른 상인회에서 전매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B상인회 회장은 "1세대의 경우 이곳이 자기 땅이 아닌데도 자기 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이른바 2세대로 불리는 사람들과 괴리감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상인들은 이 같은 반목이 지나친 경쟁을 낳아 소래포구의 서비스 질을 하락시키고, 수산물 품질마저도 나빠지게 했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남동구에서는 이 때문에 상인회를 하나로 모은 일종의 법인을 설립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과거의 앙금이 해소되지 않아 하나로 합친다는 계획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는 상인들이 많다.
기존 회장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C상인회 회장은 "모두가 합쳐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동안 10여 년간 같은 사람이 회장을 맡아온 곳도 있어 기득권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외부에서 상인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 온다면 소래포구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현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