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카충은? 솔까말 화떡녀 근자감 깜놀!"

어느 청소년이 휴대전화로 대화한 문자의 내용이다. 얼핏 봐서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버스카드 충전은?(버카충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솔까말) 화장 떡칠한 여자의(화떡녀) 근거없는 자신감(근자감)에 깜짝 놀랐어(깜놀!)"라는 뜻이란다. "엄마가 문상 10만원을 주셨어." 나는 어떤 어머니께서 나이 어린 학생에게 문상을 가라고 10만원씩이나 주는지 놀랐다. 그런데 '문상'이 문화상품권이라는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문상'이라는 단어가 상품광고에서도 문화상품권의 줄임말로 널리 쓰이고 있었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의 잘못된 띄어쓰기는 아예 옛 이야기가 됐다.

설명 없이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해괴망측한 줄임말이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인다. 이 같은 줄임말을 쓰지 않으면 서로의 대화에서 소외된단다. 오히려 시험볼 때나 대화할 때 원래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공공기관에서 우리말을 홀대하는 풍조도 여전하다. 2002년 'Hi 서울'로 영문표기를 시작한 이후 지자체마다 '다이내믹(Dynamic) 부산', '컬러풀(Colourful) 대구', '프라이드(Pride) 경북' 등 영문으로 된 구호 일색이다. 인기 드라마의 제목 '차칸 남자'가 논란을 빚은 끝에 '착한 남자'로 바로 쓴 적도 있다. KT, KB로 시작된 회사 이름의 영문표기에 따라 농협이 NH로 탈바꿈한 것에는 실소가 터졌다. 우리말과 글의 훼손 상태는 심각한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우리말의 뒤틀림 현상은 더 있다. 커피전문점에서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더니 종업원은 "7천원이십니다"라고 말한다. 이어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진하시면 물을 더 타 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 상대방을 높여야 할 것을 물건인 커피를 높이고 말았다. 병원에서 혈압을 잰 간호사가 "아버님, 혈압이 높게 나오시네요"라고 한다. 누구의 아버님이라는 건지 아무한테나 '아버님'이라 하고, 또 혈압이 높게 나오신단다. 보험회사 광고에서도 "벌금이 나오셨다고요?"라고 말한다. 벌금도 존칭을 받는다. 사람보다 물건을 존대하는 꼴이다. 행사장에서는 "00님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라고 한다. 말씀에 존칭을 한 것은 애교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의회에서 영어연설을 하면서 40차례나 박수를 받은 날 대전의 어느 대학교가 국어국문학과를 폐지했다는 소식이 함께 들려왔다. 국어국문학과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과를 '한국어문학과'로 통폐합했다. 이제 이 대학교의 국어국문학과가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폐지이유는 취업률이 낮아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 대학뿐 아니라 이미 여러 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를 폐지하거나 통폐합했다. 어느 학교는 문화콘텐츠학과로 바꾸기도 했다. 학문은 제쳐두고 대학을 무슨 취업전문 기술학원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슬프다. 국문과를 폐지하는 대학은 점차 늘어날 태세이고, 역사교육은 왜곡되는 요즘이다.

언어와 역사를 잃는다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특히 국어국문학은 인문학의 기초다. 우리말을 제대로 가르치고, 올바로 익히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을지도 모른다. 일제 36년간 우리말이 사라졌던 아픈 기억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사용하려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는 마침내 광복을 이뤄냈다. 일상의 삶 속에서 하루라도 문자와 언어생활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올바른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막중한 책임이다. 올해부터 22년 만에 한글날을 공휴일로 되찾은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1970년대 각급 학교 정문에 붙어 있던 '국어사랑 나라사랑'이라는 현수막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교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