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겸 한국학 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
예나 지금이나 정권이 바뀔땐
벼슬자리 청탁·인사추천 심해
참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할순 없을까
청탁할땐 몰래 했다고 하지만
결국 몇천년후 다 밝혀지는것을


흔히 우리가 벼슬이라 일컫는 관직은 인간의 생활에 크게 영향을 끼쳐 왔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특히 벼슬에 나가고 고위직에 오르는 것을 출세의 기준으로 여기는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보다 좋은 벼슬자리를 갖고자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안간힘을 다했다. 스스로 노력하여 자신의 실력으로 다행히 원하는 벼슬자리를 얻는 것은 능력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자신을 알아달라고 선전하면서 한편으로는 남에게 힘을 빌리고 도움을 요청한다. 취직이나 승진, 전직 등 벼슬자리를 부탁하는 인사 청탁은 그 종류와 내용이 매우 다양하다. 물론 벼슬자리 청탁은 아주 오래 전에도 있었다.

지난 5월 25일 '문문'(문헌과 문물) 학술대회에서 백제시대 벼슬자리 청탁의 실례를 소개하는 흥미로운 글이 발표되었다. 부여 구아리 319 유적에서 출토된 13점 목간 중에서 442번 목간에 적힌 묵서의 내용이 그것이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또는 그 사용이 용이하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 흔히 문서나 편지 등의 글을 일정한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목독) 또는 대나무 조각(죽간)에 썼으며, 이것들을 통칭하여 목간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죽간이 보다 많이 발견되었고, 일본에서는 목간이 많이 발견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목간이 소량 확인되었다. 그러나 비록 숫자는 많지 않지만, 당시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442번 목간에는 글자가 앞면에 12자, 뒷면에 20자가 쓰여 있다. 물론 이것이 쓰인 시기가 워낙 오래된 까닭에 글자의 상태가 온전하지 않아 정확한 판독과 해석은 어려움이 있으나, 그런 대로 대강은 이해할 수 있다. 발굴자 심상육의 발표에 따르면 그 내용은 "보내주신 편지 삼가 욕되게 하였나이다. 이곳에 있는 이 몸은 빈궁하여 하나도 가진 게 없으며 벼슬도 얻지 못하고 있나이다. 좋고 나쁨에 대해서 화는 내지 말아주십시오. 음덕을 입은 후 영원히 잊지 않겠나이다"라고 한다.

이 목간을 보낸 이와 받는 사람의 이름이나 호칭이 적혀 있지 않다. 보낸 곳과 받은 곳도 날짜도 없다. 그래서 언제 어디에 있는 누가 보낸 것이고 또 누가 받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출토된 곳이 부여이고 이곳이 백제 후기의 도성인 사비성인 만큼 약간의 추측은 해 볼 수 있다.

이것은 벼슬자리를 청탁한 편지 성격의 글이다. 첫 문장을 보건대 사비성에 있는 어떤 사람이 다른 누구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리하여 편지를 받은 사람은 보낸 이에게 이 편지를 써서 보내게 하는 수고를 끼쳤다고 의례적인 사과를 하고 있다. 아마 누군가가 목간이 발견된 사비성 안에 거주하는 지체 높은 사람이 보낸 편지를 받고 다시 그에게 답신으로 작성한 것임을 추측케 한다.

이어지는 문장을 보면, 누군가가 사비성 안의 사람에게 벼슬자리를 부탁하는 글을 보냈고, 이에 받은 사람이 편지를 보내 무언가를 이야기했던 모양이다. 이에 청탁한 사람은 자신은 가난하여 하나도 가진 게 없으며 벼슬을 얻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좋고 나쁜 것에 화를 내지 말아 달라. 당신으로부터 입은 어떤 음덕이라도 뒷날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이른바 칭념형 서간문으로, 자신이 바라는 목적과 생각을 편지글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벼슬자리를 갖고자 하는데 도와달라는 청탁이다. 이 편지의 주인공은 과연 벼슬자리를 얻었을까? 또 편지를 받은 사람은 벼슬자리를 만들어 주었을까? 못내 궁금하다. 아마 백제시대에 이 목간을 받은 사람은 이것을 몰래 보관했을 것이다. 그런데 약 1천4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발굴자에 의해 드러나고 말았다. 목간을 주고받은 인물들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면 이것이 벼슬 추천의 실제이건, 아니면 인사 청탁의 비리건 백제시대 사회생활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벼슬자리 청탁, 인사 추천은 참 말도 말고 탈도 많다. 정권이 바뀔 때면 더욱 그러하다. 좀 투명하고 명확한 자료에 의해 공정하게 추천하고 부탁할 수는 없을까? 설사 청탁할 때는 몰래 했다고 하지만. 이 목간을 보세요. 몇 천 년 뒤에도 밝혀지는 걸!

/김창겸 한국학 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