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기억 구월동
철거중 건물 볼때마다
통째 뜯겨나가는 기분


왜 우리는 그 책을 쓴 작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가. 인천 출신 소설가 안보윤은 "소설 속에 존재하는 어떤 순간(장면)들은 작가의 내밀한 고백과도 같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린 2013인천시민인문학강좌 상반기 7번째 강좌에서 안보윤 작가는 '나의 문학과 인천-가만히 귀 기울이면'이란 주제로 강의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안보윤 작가는 1981년 인천 구월동 '어디쯤'에서 나고 자랐다. 어디쯤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가 살던 구월주공아파트가 지금은 사라졌기 때문이란다. 안 작가가 지난 2월 펴낸 소설 '모르는 척'에는 그의 유년시절이 녹아있다.

이 소설에는 망가지거나 부서진, 사라졌거나 사라져가는 도시들이 자주 등장한다. 안 작가는 소설 속 마을이 확장되면서 새로 들어선 건물들을 '완공된 건물은 너나없이 더럽고 추레했다'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손쉽게 집을, 가게를, 거리를 부쉈다. 그곳에 고인 기억들이 함께 부서지는 것에 대해 안 작가는 "상처받았다"고 했다.

안 작가는 "내가 살았던 '어디쯤'들을 찾아가 본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어느 때는 황폐한 누런 땅과, 어느 때는 앙상한 철근구조물과 마주쳤다"며 "고층아파트와 빌라, 철거중인 건물을 볼 때마다 유년의 기억이 통째로 뜯겨나가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작가가 소설 배경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의 기억을 뒤적거리는 일이다. 직접 경험은 상상보다 훨씬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소설에 어울리면서 의도에 부합하는 장소나 분위기는 '기억의 호주머니'에서 찾아낸 것들이다. 안 작가는 이를 '마주선 것들의 기록'이라고 했다.

안 작가는 변화가 불가피한 '경계선'에 놓이는 일에 비교적 익숙했다. 살던 아파트가 헐리고 새 아파트가 들어선 것부터, 편리와 효율성을 내세운 개발계획에 헌책방 골목의 문화적 정취와 역사가 비틀거린 것 등을 경험했다. 기원을 따져나가면 인천 그 자체도 육지와 섬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

안 작가는 "우리는 수시로 변화의 경계선에 놓인다. 녹아버린 사탕처럼 허물어진 건물과 45층짜리 건물이 마주하는 장면에 위화감이 사라질 만큼 자주 말이다"라며 "전통시장에서 십 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들어선 대형마트와 전철역 지하상가 머리 위에 켜켜이 쌓인 쇼핑몰의 경계선, 그것들이 때로는 잃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느 인천 작가와 마찬가지로 안 작가에게도 '철로'와 '바다'라는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단된 철로와 바다의 이미지는 그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안 작가는 "소설에 있어 작가의 삶이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결론지으면서도 "소설 속 한 장면에 등장하는 월미도 '디스코 팡팡'이나 재개발 지역을 뒤덮은 거대기업 아파트단지, 수면이기도 무른 땅의 표면이기도 한 서해바다 귀퉁이는 나의 '내밀한 고백'과 같다"고 했다.

상반기 8번째(마지막) 강좌는 오는 25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임선기 시인(연세대 불문과 교수)이 나와 '나의 문학과 인천' 시리즈 세 번째 강연을 한다.

/김민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