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내가 락순이야.” “그래, 그래.” 50년만에 만난 6남매는 오랜 침묵에 빠졌다. 북쪽에 언니와 동생들이 모두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날 것같이 기뻤던 선우락순 할머니(74)는 언니인 락희씨(76)와 여동생 영자(68) 영희(62)씨, 남동생 안구(65) 안윤(60)씨 모두가 상봉장에 나와있는 모습에 가슴이 복받쳐 왔다. 혹시 한두명이 빠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기 때문.
그러나 선우 할머니는 형제들과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서도 남쪽에 혼자 남아 있을 동생 안현씨(72)가 눈앞에 아른했다. 7남매중 북쪽에 5남매와 남쪽에 안현씨까지 7남매 모두가 이산의 아픔을 딛고 지금까지 살아 있었던 것. 북쪽의 형제들도 안현씨의 생존소식을 알고는 눈물이 범벅이 된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선우 할머니는 아른아른하던 기억을 더듬어 동생들의 이름을 한번씩 불러봤다. “안윤이, 영자, 영희, 안구.” 동생과 언니는 서로 선우 할머니의 옷자락을 잡으며 흘러간 50년을 한순간만이라도 멈추게하고 싶어했다.
선우 할머니는 아버지가 6·25전쟁때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에 오열했고 동생 영희씨는 언니의 흐르는 눈물을 연방 닦아주었다. 그러나 막내가 어머니를 최근까지 모시고 있었다는 소리에는 “그래 네가 효자구나”라며 감사했다.
선우 할머니는 평양에서 교원으로 있던 남편이 1947년 월남하자, 1년뒤 한살된 아들의 손을 붙잡고 월남하면서 형제자매들과 헤어졌다. 당시 언니 락희씨는 시집을 가서 평원군에 살고 있었고 다른 동생들은 평남 대동군 부산면에 있는 선우씨 집성촌(集姓村)에 살고 있어 이별을 친정에 알리지도 못했다.
선우 할머니는 형제들의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헤어진 아픔 때문에 고향의 형제들을 그동안 한시도 잊지 못했었다. 동생 안현씨는 1·4후퇴때 남쪽으로 내려왔다.
동생 안구씨는 “누나를 보니까 자꾸 눈물이 난다”며 누나의 얼굴을 연방 쓰다듬었고 선우 할머니는 “맺혔던 한이 이제야 풀린 것 같다”며 형제들의 손을 놓지 않았다./평양=공동취재단
남쪽에 혼자 남아 있을 동생 눈앞에 아른
입력 2001-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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