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화형 경희대 중앙도서관장
정치는 꾀와 말로 해선 안된다
양심과 정직으로 책임 다하는
통치자가 참된 정치인의 모습
이제는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천박한 현실정치는 끝내야한다
그래야 인류의 미래가 보인다


엊그제 북한의 계략에 의해 남북회담이 무산되는 걸 보면서 안타까워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회담을 성사시키지 못한 우리측의 태도를 비난하는 이들도 있어 더 안타깝다. 많은 이들은 정치를 과도하게 가시적이고 현재적인 가치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권모술수에 능하고 언변이 화려한 걸 멋지게 생각해 온 것도 바로 그러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정치인들이 내놓는 공약이 헛공약이라는 비아냥은 오래 되었다. 오죽하면 정치인들은 3분에 한 번씩 거짓말한다는 책이 나왔을까. 정치를 꾀로 하고 말로 해서는 안 된다. 양심과 정직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참된 정치인의 모습이다.

현대 정치지도자 중 부정으로 얼룩지지 않고 극적으로 깨끗하게 은퇴한 이가 레오폴 상고르(Senghor)다. 1960년 세네갈 독립과 함께 대통령이 된 시인 상고르는 국민들의 절대 지지 속에 다섯 번을 연임했고 집권 20년이 된 1980년 임기 중에 과감히 물러났다. 조국을 떠나 정치와 담을 쌓은 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다 여든 다섯에 세상을 떴다. 1983년엔 흑인으론 처음 프랑스 한림원 아카데미프랑세즈 회원이 됐다. 2년전 16주 종합베스트 1위에 정통인문서로서는 드물게 한 달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던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Sandel) 하버드대 정치철학과 교수는 "정치가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에 직접 관여해야만 더 강건한 민주주의사회가 구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옛 성현들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이 말에 미치지 못하게 됨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논어'에 의하면 정치(政治)란 바르게(正) 하는 것이다. 제나라 경공이 정치가 뭐냐고 물었을 때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고 했다. 정치는 정직하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었다.

세종의 리더십의 핵심은 진정한 애민의식이요, 미래정신이다. 우리의 고유문자인 한글의 창제도, 관노출신 장영실을 파격적으로 등용해 자격루를 만들게 한 것도 오로지 백성을 위한 창조적 생각의 소산이다. 세종은 백성이 살아갈 국토를 보존해야 했으니 여진족을 격퇴하여 4군6진을 설치하고, 우리나라 북쪽의 국경선을 오늘날과 비슷한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확장하였다. 복지정책차원에서도 세종은 선구적이었으니 90세 이상의 노인에게 관직을 제수하는가 하면, 관청의 노비에게 주어지던 7일 출산휴가를 대폭 확대하여 100일 간을 주고 그 남편인 남자종에게도 한 달 휴가를 주도록 했다. 현감부인인 감동이 영의정을 포함한 39명의 사대부들과 놀아난 음풍사건을 놓고 사관들이 실록에 등재하지 않을 것을 진언하자, "역사는 오늘을 사는 당시대의 사람들을 위해서 적는 것이 아니라, 후세의 사람들에게 오늘 우리가 겪은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 적는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던 세종이다.

행동하는 양심의 소유자 정암 조광조가 신원된 것은 선조 때이고 사액이 내려진 것은 한참 지난 효종 때였다. 그가 역적으로 몰려 있었던 그 '잃어버린 시간', 왜란과 호란 등으로 무구한 백성들만 수없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심찬 중국과 일본의 틈새에서 이 한반도가 수천 년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해온 것은 세계적으로 기적에 가깝다 할 수 있다. 도덕정치에 대한 열망이 컸던 이율곡은 특별히 조광조를 추앙한 뛰어난 정치가였다. 물론 이퇴계도 조광조로 말미암아 정치의 근본이 드러나게 되었으며 나라의 장래가 무궁하게 되었다는 글을 남긴 바 있다. 율곡은 퇴계와 정암을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퇴계 선생은 세상에서 유교의 최고봉이요 정암 이후로는 견줄 만한 분이 없다. 그 재주와 배짱은 정암에 미치지 못할지 모르겠으나, 의리를 탐구하여 자세하고 은미한 데까지 드러내는 것은 정암이 미치지 못한다."
물론 현장이 고려되지 않는 정치라면 공허하기 그지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미래를 내다보는 철학이 부족하다면 그 정치는 천박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제 천박한 현실정치는 끝내야 할 것이다. 정말로 멋진 정치의 미래, 인류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이화형 경희대 중앙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