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한국 경제는 중소기업에 관한 몇 가지 당면과제를 안고 있다. 그 문제들은 한국 경제의 성장 과정에서 잉태되어 고착된 문제들로서 해결책이 그리 만만치 않다. 첫 번째 문제는 중소기업의 낮은 혁신성 문제이다. 중소기업의 혁신을 높이려고 해도 자체적인 혁신 능력이 부족하고 자원 확보 역량도 떨어지는 편이다. 두 번째 문제는 대·중소기업 사이의 구조적 문제이다. 오랜 하청 관행이 굳어져서 중소기업이 스스로 성장을 계획할 수 없다는 한계가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한국 경제의 성장모델이 통했던 '표준화' 시대 이후에 대한 대비 문제이다. 표준화 시대에서는 반도체 및 자동차를 비롯한 조립 산업에서 성공하고 있지만, 미래 시대가 요청하는 창조 경쟁에 관한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이 과제들은 공통적으로 중소기업의 혁신 능력이 강해질 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우리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중 99%의 비중을 차지하지만, 한국 경제의 성장 역사에서 잉태된 구조적 문제들로 인해 혁신 능력을 좀처럼 향상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중소기업의 역할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중소기업을 경제 중심에 세우기 위해서는 무언가 새로운 판세를 바꿀 수 있는 선도 종(種)이 필요하다. 생태계 전체를 변화시키는 종을 생물학에서는 '생태공학자'라고 부른다. 생태공학자는 생태계 구조를 바꾸거나 다른 종들의 생존조건을 바꾸는 기능을 맡는 종자(種子)이다. 구체적으로, 한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변경시키면서 생태계 전체의 운명도 바꿀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생태공학자이다. 사막의 다습성 식물, 초원의 들쥐, 북태평양 연안의 해달, 땅속 공간의 지렁이 등이 잘 알려진 생태공학자들이다. 한 생태계는 생태공학자에 의해서 존립 기반이 굳어지고 미래 진로를 개척한다. 이렇듯 생태공학자는 생태계 전체의 발전을 위해 공헌한다.

현재 한국 경제에서 생태공학자의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기업은 바로 벤처기업군(群)이다. 중소기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넓혀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판도를 바꾸려고 전선에 나서는 첨병이 필요한 것이다. 창조와 혁신으로 승부하는 중소기업의 상징인 벤처기업군이 그 첨병 역할을 맡을 수 있다. 벤처가 첨병 역할에서 성공한다면, 중소기업을 경제의 주역으로 도약시키는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벤처는 단순히 자신만의 변화를 생각하는 종(種)이 아니며, 경제생태계 서식조건 자체를 변화시킬 역량을 갖고 있다. 한국 경제가 안고있는 당면과제인 부품소재 분야의 발전, 경제체질의 개선, 창조적 경쟁력의 공급 등의 과제들도 벤처를 통해 선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바람직한 미래 진로는 대기업의 경쟁력이 유지된 상태에서 중소기업의 혁신이 커지는 진로이다. 실제로 창조경제에 들어서면서 '구글' 혹은 '페이스북'과 같은 신생 창업기업의 혁신성에 의해 산업 판도가 바뀌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신생 벤처기업에 의해 이런 혁신성이 보완되는 날이 빨리 와야 하며, 그것은 벤처에 의해 가능하다. 또한 우리가 강한 조립완제품 분야를 보더라도 일본과 독일 등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볼때, 부품소재기업의 경쟁력은 정말 중요하다. 이 부품소재 분야의 경쟁력도 벤처기업의 역량에 의해 해결된다.
'벤처'가 생태공학자로서 역할을 한다면, 한국 경제의 당면과제들에 대한 해결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믿는다. 물론 현재 벤처기업군이 보여주는 단면과 기대 역할 사이에는 간격이 있지만, 여기서 분명한 것은 벤처의 위상 정립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중소기업을 전면에 내세우는 동력이며, 나아가 한국 경제를 도약시킬 지름길인 것이다. 하루빨리 벤처가 한국 경제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해야 하는지, 또 새롭게 맡을 역할변화를 어떻게 초래할 것인지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놀랍게도 한국 경제를 도약시키는 지름길이 거기에 있다.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