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반값 등록금이다.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경감시켜 주기 위해 반값 등록금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문제는 정치권에서 처음 공론화시킨 다음 그들의 생색내기 용으로 전락한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실질적인 대책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 전략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유권자를 유혹하는데 성공했을지는 모르지만 실제 대학 현실에서 반값 등록금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다.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수업 시간을 단축한다든가 강의 단위를 대형으로 조정한다든가 아니면 전임 교원에게 수업시수를 더 많이 요구한다든가 하는 일이 여러 대학에서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반값 이야기로 인해 대학에서는 등록금 인상은 말을 꺼낼 수도 없는 분위기이고 이에 역행하면 여러 제재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교육 당국자의 위협이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선 한국의 대학 경쟁력을 논하는 상반된 요구가 있다. 국내 순위가 정해지고, 아시아 순위가 발표되고, 세계 순위가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대학 경쟁력이 아주 부진하다고 질타한다. 한국의 대학이 새로운 세기를 선도하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세계 수준의 성과물을 산출하게 만드는 확실한 지원과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최근 정부는 미래창조의 현장이 대학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대학이 미래 창조의 생산 현장이 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추진해야 정부의 발표가 현실화될 것이다.
다음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대학에서 배출하는 인재들을 그대로 산업현장에 투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의 유수한 기업의 최고 경영자를 만났다. 그 분은 대학 평가 왜 그렇게 합니까?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 평가가 현장에서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대학 교육이 현장에 필요한 인재를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최고의 기업에서 연봉과 그 몇 배에 해당하는 교육비를 들여 신입사원들을 훈련시키고 나면 삼사년 사이에 상당수가 회사를 퇴직하고 만다는 것이다. 해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생산 현장에 있는 그들의 고민이라는 것이다. 겨우 유능한 인재로 훈련시켜 놓으면 직장을 바꾸어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는 것이다.
좀 더 편하고 쉬운 직종을 찾아가는 젊은 세대를 바라보면 한국은 앞으로가 아주 문제라는 그 분의 독백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분의 이야기는 겉으로 화려한 스펙을 쌓느라고 방황할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생산 현장에서 견딜 수 있는 인간교육이 더 절실하다는 것이다. 겉으로 나타나는 지표라는 것이 현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쓸모가 없다는 그 분의 발언에 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대학은 당장 현장에 필요한 교육만을 하는 곳은 아니다. 대학은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당장의 필요는 당장의 쓸모일 뿐이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한국의 대학교육이 현장교육도 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인문 교육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국가 발전의 동력이 되고 인류문화에 기여하는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국가적 경쟁력은 순식간에 추락할 것이다. 반값 등록금으로 대학생 유권자를 유혹하고 대학을 압박하는 정치권력이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졸업생을 양산하고 있는 대학 당국 모두 일대 개혁이 요구되는 중대한 시점이 바로 눈앞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최동호 시인·고려대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