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수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
우리나라 산지 많은탓에
돌개바람을 키울순 없지만
홍수·가뭄등 기후재난에 취약
올해도 어김없이 이상기후 징후
더 늦기전에 '재난·안전관리'
정치 중심으로 떠올라야


끝없이 펼쳐지는 대평원과 그 위 파란하늘에 피어오른 흰 뭉게구름. 오클라호마 지역의 평화스러운 5월 모습이다. 그러나 이 구름색깔이 검게 변하고 지평선과 맞닿으면서 깔때기 모양으로 변하는 순간, 굉음과 함께 시속 500여킬로미터의 믿을 수 없는 속도의 돌개바람은 광란의 재앙이 되어 단숨에 모든 것을 쓸어간다. 토네이도라는 것이다. 오클라호마에서는 올해 5월에만 두 차례의 토네이도로 6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여러 개의 마을이 초토화 되었다. 히로시마 원폭의 600여배가 되는 위력이었다고 한다. 가슴 아픈 비극이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기술의 진보에 오만해져 있는 우리 인간에게 보여주는 자연의 위력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피해를 일으킨 토네이도가 없었다. 산지가 많은 탓에 돌개바람을 키울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산지가 많은 것이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이고 종심이 짧은 반도의 형태라서 홍수와 가뭄 등 기후재난에 대단히 취약하다. 특히 여름철에 집중된 강우는 일시에 많은 양의 물이 급경사를 따라 쏟아져 내려와서 홍수와 산사태를 일으키고, 비가 적은 계절에는 물이 부족하다. 농경시대에 치산치수를 왕도의 중심으로 삼았던 이유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상기후의 징후는 나타나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는 기후변화의 시대에 우리가 겪은 겨울철의 혹한은 여름철의 혹서를 예고하고 있다. 태풍, 호우 등 기후재난은 절대적으로 기온과 바닷물 온도의 변화에 좌우된다. 특히 태풍은 높은 해수온도에서 급속하게 성장한다. 이론적으로 해수면 온도 1℃ 상승시 태풍의 최대풍속은 5%가 증가된다고 한다. 지난 30년간 평균 해수면 온도가 0.5℃ 가량 상승했으며 이에 따른 최대풍속 증가는 3% 정도이고 태풍의 잠재강도는 대략 10% 증가되었다고 한다. 태풍 1개가 원자폭탄 1만개에 해당하는 위력이라고 할 때 10% 증가는 100개의 원폭이 더 폭발하는 위력인 것이다.

실제로 지난 1960년대 후반부터 지구의 평균온도는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지난 한 세기동안 우리나라의 평균온도상승은 세계평균의 2배에 달하고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의 증가도 아주 높은 편에 속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기후재난의 강도는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 그동안 한반도에 내습한 태풍의 순간최대풍속 1위부터 10위까지가 모두 2000년을 전후해서 분포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도시가 위험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의 강도가 급격하게 커지기 전까지만 해도 도시는 비교적 안전했다. 큰비로 제방이 터지고 마을이 물에 잠기는 곳은 하천정비가 안되고 하수도 시설이 미비한 비도시 지역이었다. 그러나 근래의 상상을 초월하는 집중호우의 양과 강도는 기존의 집배수시설의 용량을 크게 넘어섰고, 게다가 녹지와 습지를 대체한 건물과 포장노면은 강우의 대부분을 일시에 낮은 곳으로 쏟아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도시가 물에 잠기면 그 피해는 크다. 많은 사람과 비싼 시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마비는 경제를 위축시키고 사람들의 불안과 불만을 크게 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나마 국토의 골간이 되는 주요 강이 정비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도시의 배수시설과 저수시설을 확충한다 해도 넘치는 물을 처리할 강이 부실하다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도시를 재난으로부터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돈과 좋은 방법, 그리고 세월이 필요하지만 특히 필요한 것은 정부의 결단과 시민의 뒷받침이다. 왜냐하면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투자와 조처이지만 재난에 대한 경각심은 당할 때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도시들은 과연 이 강력한 이상 징후에 대비하고 있는가? 기후변화 시대, 더 늦기 전에 재난 및 안전관리가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떠올라야 한다.

/박연수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