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민생국회'라는 말은 국민이 정해준 것이 아니었다. 여·야 정치인들끼리 합의한 것이다. 여·야는 이번 6월 임시회에서 국회의원 겸직금지, 국회의원 연금제도 개선 등 기득권을 내려놓는 법안을 비롯해 경제민주화 입법 등 각종 민생개혁 법안을 처리키로 합의했었다. 그런데 모두 물건너간 것 같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문제와 지난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여부를 놓고 여·야가 '목숨걸기'식으로 대립하면서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작태가 또 재현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타임머신을 타고 2012년 12월 대선정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부끄럽고 창피한 한국정치의 한 단면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지만 마치 '대선 연장전'을 치르는 듯한 이 한심한 작태가 개탄스러울 뿐이다. 정치인들의 싸움에 버금갈 정도로 국민들간의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대화록 공개의 적법성 여부를 문제삼는 측과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에 대한 국정조사를 주장하는 측으로 쫙 갈라졌다. 우려됐던 남남갈등이 현실화 된 것이다.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 같다. 서로를 비난하는 폭력적인 언어가 차마 눈 뜨고 못 볼 정도다.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취지 발언을 부각시켜 국정원 선거 개입을 희석시키려는 여당의 잔꾀와 국정조사를 감행함으로써 10월 재·보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야당의 속셈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런 분위기로 가다가 국정원 국정조사는 물건너가고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취지 발언을 둘러싼 실체적 진실도 진위논란 속에 흐지부지 묻히게 될지도 모른다. 국민들이 받은 상처는 관심 밖이고 늘 당리당략에만 집착했던 여·야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도 이런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유·불리를 따지는 한심한 정치행태를 지켜보는 것도 고역이다. 유리한 사안은 밀고나가면서도 불리한 사안은 회피하는 정치인들을 보는 것도 이제 지쳤다. 지금 여·야가 할 일은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사실관계와 책임소재를 가려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고 교훈으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바른 해법이다. 만일 그 정도도 하지 못한다면 여·야 정치권은 국론분열을 유발하는 일체의 행위를 중지해야 한다. 지금 남남갈등이 그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