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밥 한술씩 떠서 모아 줘
되레 과식했던 고교시절 추억…
어렵고 힘든 이웃들 볼때마다
배고픈 벗을 잊지않고 챙겼던
'십시일반 미덕' 그때가 그립다
최근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 역장이 한 달 가까이 입원을 했다. 2003년 영등포역에서 아이를 구하고 잘려 나간 두 다리에 생긴 심한 염증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병문안을 갔더니 스스럼없이 다친 곳을 보여 주며 의족 탓에 생활하는데는 큰 불편이 없다고 씩 웃었다. 문득 그 때 목숨을 구한 아이는 얼마나 커서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궁금했다.
글쓴이는 김행균씨의 철도고등학교 같은 반 동창이다. 3년을 같은 교실에서 공부한 탓에 형제나 다름없는 친구다. 철도고등학교는 지금은 없어지고 철도전문대학으로 바뀌었지만 내가 입학하던 1970년대 후반에는 전액 국비 장학금으로 배우는 탓에 전국 각지에서 가난한 수재들이 몰려들었던, 철도공무원을 양성하는 특별목적고등학교, 그야말로 특목고였다.
글쓴이가 다녔던 구내업무과는 50명 딱 한 반이었는데 다들 가정 사정이 넉넉지 않아서 고만고만했다. 학교 근처 사설독서실에서 다녔던 나, 신문보급소에서 다니던 친구들 등등을 포함해 몇몇은 도시락을 싸오지 못했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남은 숟가락이나 젓가락과 함께 도시락 뚜껑에 밥 한 술씩을 모아서 함께 먹었다. 그런데 참으로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곤 했다. 도시락을 싸온 친구들 밥보다 안 싸온 친구들의 도시락 뚜껑밥이 더 많은 것이었다. 어렵고 힘든 이웃을 볼 때마다 과식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김 역장이 아무 거리낌 없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것도 배고픈 벗을 챙기던 십시일반 정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때 함께 도시락을 나눠 먹었던 친구들 대부분은 전국 각지에서 승무원으로, 역장으로 사람들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열의 한 술 밥이 한 그릇 푼푼하다"라는 우리 속담과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사자성어가 늘 반갑고 고마운 이유이기도 하다.
속담이나 사자성어나 모두 비슷한 의미이지만 미묘한 뜻 차이가 있다. '십시일반'은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밥을 보태면 한 사람이 먹을 만한 양식이 된다는 뜻으로, 여럿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쯤은 도와주기 쉽다는 것을 비유를 통해 강조하는 것이고 속담은 '푼푼하다'라는 말을 통해 1이 열 개면 단순히 10이 아니라 그 이상이 됨을 강조하고 있다.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내는 힘, 그것이 진정 도움이고 나눔이다.
김 역장은 그 아픈 다리로 아들과 함께 축구는 맘껏 할 수 없지만 다리를 놓아주는 일은 더 많이 할 수 있다고 자랑이다. 실제로 김 역장은 오랜 투병 끝에 복직한 뒤로 눈부신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아름다운 도서관 만들기, 희망열차, 그리고 매년 산간벽지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철도 여행을 시켜주는 선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두 다리를 잃은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다리를 자신의 다리로, 이웃의 다리로 만든 셈이다.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경제대국이라 하는데 실제 가난한 서민들은 점점 더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열에 한술 밥이 한그릇 푼푼해지는 정신을 구현한 제도와 사회 분위기가 절실하다. 김행균 역장과 같이 영원히 마주보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평행선 철로를 위해 '우리는 평행선'이란 시를 써 보았다.
철도고에서 /철도 공무원 꿈 키우던 벗! /지난날 주고받던 우리 이야기/눈감으면 꽃잎처럼 되살아난다.//철도는 평행선/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영원히 함께 달리는 /애정의 거리라는 그 말 /붙어 뒤엉킨 채 넘어지는 것 보다 /떨어져 마주 보며 /철도처럼 나란히 /평행선을 달려가자던 그 말//더 넓고/더 많은 세상 열기 위해 /하나의 평행선으로 /또 다른 다리를 놓았구나./아이 웃음 살리기 위해 /생명의 다리 놓고야 말았구나.//우리 마음을 달리는 열차는 /이제 앞으로만 달리지는 않는 거야./평행선과 평행선이 서로 만나 /커다란 광장에 평화를 만들고/아이들 웃음소리 더 크게 담아/어우러지는 물처럼/더 큰 사랑이 흐르고 있는 거야.
/김슬옹 세종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