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선진국들의 양적완화 출구전략에 즈음해 국가부채 문제가 다시 주목되고 있다. 작금들어 각국의 나라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미국은 시퀘스터의 적용으로 향후 10년 동안 총 1조2천억 달러의 재정지출을 줄일 계획인데 천문학적인 재정적자가 직접적인 배경이다. 미국의 정부부채는 작년 말 현재 16조4천억 달러로 국가부도지경인 법정 상한선을 돌파한 것이다. 기축달러국의 지위를 이용해서 달러화를 남발한 것이 화근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경기부양을 구실로 해마다 1조 달러 이상씩 빚을 불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일본은 국가부채가 970조엔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최고(205.3%)여서 재정파탄 내지는 금리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정부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 눈치이다. 아소 다로 재무상의 "엔화를 찍어서 빚을 갚으면 된다"는 발언이 시사하는 바 크다.

지난 4월 박근혜 정부는 대선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마련을 목적으로 17조3천억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한국은행 잉여금 2천억원과 세출감액 3천억원, 세계(稅計)잉여금 3천억원을 제외한 15조8천억원은 국채발행을 통해 조달했다. 마이너스통장의 대출한도까지 융자받은 것이다. 덕분에 중앙 및 지방정부, 국민연금 등의 빚이 2003년 165조원에서 10년만에 3배 가까이 증가, 부채규모가 480조4천억원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은 36.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02.9%에 한참 못미친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부채수준이 양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연구원 조성원 박사의 "한국과 네덜란드 등 소규모 개방경제국들은 정부부채비율을 35.2%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목된다. 경제규모가 작고 금융시장이 개방된 국가일수록 외부 충격에 취약한 만큼 부채비율을 낮게 유지해야 하는 탓이다. 부채증가속도가 빨라지는 점도 걸림돌이다. 시티그룹의 경고에 눈길이 간다. 새정부가 복지예산을 늘리는 대신 사회간접자본 지출을 줄이기로 한 것은 정부부채를 더 키울 수도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지난 1일 감사원의 발표는 충격이다. 한국전력, LH(한국토지주택공사), 도로공사, 수자원공사 등 비금융 공기업 9곳의 부채가 2007년 127조9천억원에서 2011년에는 283조원으로 무려 121%나 격증한 것이다. 4대강 사업, 세종시 및 보금자리주택 건설 등 국책사업을 공기업에 떠넘긴 것이 패착이었다. 물가안정을 위한 공공요금 인상억제는 공기업의 재정건전성을 크게 훼손했다. 국회동의 등이 요구되는 국채발행에 비해 통제정도가 약한 것도 원인이었다.

295개 공공기관으로 확대하면 부채규모는 2011년 기준 493조4천억원으로 점입가경이다. 2008년 290조원에 불과했던 것이 이명박정부 4년 동안에 200조원 넘게 늘어난 것이다. 공공기관의 채무는 넓은 의미의 정부의 빚이어서 이를 합치면 국가부채 토털은 1천조원에 육박한다. 또한 정부채무 대비 공공기관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118.3%로 이미 경고등이 켜진 실정이다. 빚의 대물림 시비는 언감생심이고 조만간 저금리, 저물가체제가 동요할 개연성도 없지 않다. 미국처럼 돈을 찍어서 빚을 상환할 수도 없고 고민이다.

공공경비가 점증하는 것은 사회발전에 따른 필연적 결과이다. 양극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는 재정적자를 가속화시켰다. 그러나 정치인을 비롯한 관료집단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기업가들이 이윤극대화를 목표로 하듯 정치적 비즈니스맨들은 권력의 극대화에 주력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하기위해 나라 곳간을 축내는 약속들을 확대재생산한다. 더 많은 돈은 더 큰 권력을 의미하기에 관료들 또한 예산확대에 적극적이다. 심지어 관료들은 정치지도자와 대결에서도 종종 승리하곤 한다. 카터와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의 '작은 정부'공약이 공약(空約)으로 마무리된 것이 상징적인 사례이다.
현대정치체제 자체가 재정적자를 부추긴다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뷰캐넌의 지적에 눈길이 가는 이유이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