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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결정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어
지금이라도 인간존엄성을
정말 상승시킬수 있는지
비판적 관점에서 되돌아봐야
과학기술은 인류의 삶을 매우 풍요하게 만들었다. 인류는 지금도 기술홍수 속에 살고 있고 육체와 마음을 기술에 의존당하고 있다.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18세기 후반 이후 서구사회는 대량생산이라는 혜택을 누리게 되면서 인간의 삶이 비로소 심한 노동에서 벗어나게 된다. 디젤기관차, 전기, 트랜지스터, 반도체 등 인류는 쉴새없이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술개발을 통해 달성해 왔다.
이러한 기술의 어원은 그리스어 테크네로고스(technelogos)로 알려져 있다. 테크네는 예술, 손재주, 기술, 술수 등 창의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여기에 진리, 논리를 뜻하는 로고스가 더해져서 테크네로고스는 글자대로 한다면 창의성과 관련된 진리라고 할 수 있다. 어원을 놓고 보면 요즘 한국 사회에 회자되고 있는 창조경제와 그다지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여기서 우리는 한번 짚어봐야 할 이슈가 있다. 기술개발에 있어 과학기술결정주의다. 과학기술결정주의란 어떠한 기술개발이라도 이는 결국 인류의 삶을 살찌우고 편리하게 해준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기술발달 또는 기술개발과 더불어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게 생명윤리부문이다. 생명윤리부문에서 많이 회자되는 사례는 시험관아기와 복제양 돌리 논쟁이다. 특히 후자의 복제양 돌리는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복제와 맞물려서 생명윤리뿐만 아니라 과학자윤리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불임부부를 위한 시험관아기는 1978년 처음 시작되면서 많은 논쟁을 일으켰지만 현재 지구인중 400만명 이상이 시험관아기이다. 위의 두가지 사례는 아직은 인류에게 좋은 점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지만 아직도 생명과 관련된 유전자조작기술 개발은 많은 논쟁을 일으키면서 찬반이 대립하고 있으나 과학기술결정론이 우세한 논쟁으로 진행중인 사례이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 원자폭탄 역시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인류의 삶을 가장 위험하게 하는 과학기술로 대두되었다. 싼 전기생산으로 인류의 생활의 질을 높였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의 사용은 수많은 생명을 빼앗았다. 그러나 아직도 인간은 원자폭탄이 필수불가결한 과학기술로서 원자기술을 활용하고 있으며 확산시키고 있다. 역시 과학기술결정론이 우세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이다.
세계의 과학자들이 기술과 윤리문제를 공론화 한건 불과 얼마전의 일이다. 나라별로 기준과 이해도가 달랐지만 1999년 헝가리에서 열린 세계과학회의를 계기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윤리적인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도 과학기술과 윤리문제를 안다룬건 아니다. 서유럽에서는 1970년대부터 기술개발이 오히려 인류의 삶을 퇴화시킨다는 환경파괴문제를 먼저 다루기 시작했고 이러한 환경파괴를 제도적으로 막고자 1997년 우리도 잘 아는 교토의정서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절반의 성공이었다. 당시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력을 자랑하던 미국이 동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이 기술로 인해 큰 변화를 맞으며 현재와 같은 모습의 기업으로 탄생하는데는 3번의 기술혁명이 있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첫 번째는 산업혁명 이후 시작된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이다. 여기에 1910년대 무렵 미국의 포드자동차가 모델T를 컨베이어 벨트방식으로 생산하면서 값싼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었고 기업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두 번째 변화를 준 기술은 PC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PC로 인해 기업은 더욱 저비용 고효율생산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되었고 본격적인 디지털시대를 열게 되었다. 세 번째의 주인공은 인터넷이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온라인 상거래가 급격히 성장하게 되면서 우리들의 많은 삶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PC 및 인터넷의 발달은 여기에 부응하지 못한 다른 기업들이나 산업을 도태시키기도 했다.
지금 이 시점에도 파괴적 기술혁신만이 기업의 성장을 이룰 수 있고 인류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한다는 과학기술결정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정말 상승시키는가라는 관점에서 다시 한번 과학기술결정주의를 비판적으로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소위 적정기술개념의 적정성장도 눈여겨 봐야 되지 않을까?
/김경환 성균관대 교수·수원시창업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