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재 논설위원
정치는 피도 눈물도 없다. 어제의 적이 오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는 내일 반드시 적이 된다. 국가의 미래도, 국민의 안위도 안중에 없다. 자신들의 그 알량한 정치생명, 그걸 지키기 위해 위기의 순간만 넘기면 된다. 시간이 흐르면 물러터진 국민들이 모든 것을 하얗게 잊어버린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번 NLL 파문으로 누가 공격을 더 잘하고 누가 역풍을 맞는지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국민들이 속으로 골병이 들고 있다는 것. 세상에 비밀은 없어 언젠가 밝혀진다는 것. 정치인은 다 똑같다는 것. 그래서 상처는 국민만 입는다는 것.

국론은 이미 분열을 시작했다. 대선이 끝나고 잠시 멈칫했던 국론은 윤창중 전 대변인 성추행 사건을 기점으로 균열 조짐을 보이더니 NLL 논란으로 완전히 쫙 갈라졌다. 인터넷상에서는 이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내전이 진행중이다. 보수와 진보 사이트간에 목숨을 내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슈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는 저 수많은 저주의 댓글들. 여기에 언론들이 가세하고, 학자를 빙자한 정치교수들이 뛰어들고, 정치인들이 싸움을, 갈등을, 증오를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 국가정보원 국정조사로 수세에 몰려있던 정국을 NLL 논란을 통해 공세로 바꾸려다 역풍을 맞는 새누리당, 대선 패배 책임론으로 바닥까지 추락했던 분위기를 NLL 논란을 통해 극적으로 전열을 정비하고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민주당 친노파, 밀리면 안철수 신당에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을 돌파하기 위해 '갈 데까지 가보자'며 몸부림치는 민주당 비노파. 이 혼란을 어떻게 수습하려고 이렇게 꾸역꾸역 판을 키웠는지 그저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NLL 파문으로 새누리당 지지율은 41%에서 37%로 떨어졌고, 민주당도 반짝 상승 후 다시 18%까지 하락했다. 양당 모두 지난 대선 이후 최저다. 그러나 지지 정당 없는 무당파는 대선 이후 최고치인 41%까지 올랐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패자고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들만 늘어났다는 뜻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나는 NLL 문건 공개를 두고 국정원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들은 안기부 시절부터 태생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즐기는 부류들이다. 그것이 자의건 타의건 정치인 사찰, 도청, 언론감시 등은 그들의 주특기였다. 그럼에도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북한의 대남공작을 저지하는 최후의 교두보라고 당연시여겼고 이것이 어느 정도 우리 사회에 용인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민족 비극의 시작이고 이를 인정한 건 치명적인 실수였다. 한때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총풍이나 북풍의 진원지도 그 곳이었고, 정치인들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식당에 버젓이 녹음기를 설치한 것도 그 곳이었다. 유신정권, 전두환정권 때는 두말할 것도 없고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부시절과 국민의 정부라는 김대중 정부시절, 그리고 노무현 정부시절에도 국정원은 버젓이 정치에 개입했었다. 문민정부 권영해, 국민의 정부 임동원, 신건 등 전직 국정원장들은 정치개입으로 감옥까지 갔다오지 않았던가.

NLL 문건 공개가 문제인지 이전 정부의 국정원 선거개입이 더 큰 문제인지 일일이 따지고 싶지 않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 듯한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점차 엉뚱한 곳으로 번지고 급기야 우리 사회가 두 패로 나뉘어 마치 해방정국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당장 이 국론분열이 지겹다. 45일간의 국정원 국정조사 기간 내전은 얼마나 치열해질 것이며 국민들이 겪을 내상은 얼마나 클지 벌써부터 끔찍하다. 특히 남남갈등으로 인한 상처가 주홍글씨처럼 고스란히 국민의 가슴에 각인되는 게 더 마음이 아프다. 그럼에도 정치인들 중 이번 전투로 인해 최소한 승자와 패자는 분명 없을 것이라고 나는 장담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국민들 사이만 갈라놓고 자신들은 교묘한 협상술로 '헤쳐모여'를 하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폭풍이 지나간 후 우리에게 책임을 전가한 '한통속'의 정치인들을 찾아내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꼭 그래야 한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