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언론에서는 '마른 장마'를 넘어 '마른 더위', '맛뵈기 장마'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논란은 '장마'란 단어가 기상학 전문용어인 동시에 생활용어로, 현재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약간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학계에서 '장마'란 한랭건조한 대륙고기압이나 한랭다습한 오호츠크해 고기압과 고온다습한 북서태평양 고기압 사이에 생기는 정체전선인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내리는 비이다. 즉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아 비가 내리면 장마이고 장맛비이다. 하지만 '장마'란 단어는 저기압, 고기압, 전선 같은 기상학적 개념이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어 왔다. 국어연구원에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여름철에 여러 날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 또는 그 비를 장마라고 정의하고 있다.
장마의 어원인 '댱마'는 '긴', '오랜'이란 뜻의 한자어 '댱(長)'과 물의 옛말인 '마ㅎ'의 합성어로 1500년대 중반 이후 '여러 날 계속해서 내리는 비'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 그 이전에는 순수우리말인 '오란비'가 사용되었다. 여름철에 여러 날 계속해서 내리는 비를 우리나라에서는 장마, 중국에서는 메이유(梅雨), 일본에서는 바이우(梅雨)라 부르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 여름철 우기를 梅雨라는 같은 한자로 표현하는데 비해, 지리적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는 '장마'라는 독특한 단어를 사용해 왔다.
이와 같이 기상학자들은 하루가 내리든 여러 날 계속해서 내리든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아 비가 오는 것'을 장마 혹은 장맛비라 정의하고, 일반인들은 계절에 관계없이, 장마전선의 유무와 관계없이 '오랫동안 계속해 내리는 비'를 장마 혹은 장맛비라 한다.
어떤 한 단어가 전문용어와 생활용어로 혼용될 때, 보통의 경우 두 용어가 뜻하는 보편적 의미가 같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장마'와 같이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단어의 보편적 의미가 달라질 때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장마'와 같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전문용어는 사회적으로 많은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장마에 대한 개념 차이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언어학자와 기상학자가 머리를 맞대고 장마에 대한 정의를 재조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른 장마'(비가 오지 않는 여러 날 계속해서 내리는 비)와 같이 희한한 말들이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류상범 수원기상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