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를 여행 중이다. 지난 4일 새벽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한 이후 다시 비행기로 동남부 도시인 가지안텝을 거쳐 산르우르파에 와있다. 산르우르파는 아브라함이 태어난 도시로 성경에서 구약이 시작되는 곳이다. 아브라함은 기독교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인 동시에 이슬람에서도 이슬람의 선조인 이스마엘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래서 인근 하란과 함께 1년 내내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최대의 성지다. 산르우르파는 터키에서 가장 더운 도시 중의 하나로 오전에도 영상 40도를 넘는다.

가지안텝에서 산르우르파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만난 터키 청년은 우리를 낯선 도시로 안내했다. 버스터미널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어리둥절했을 우리에게는 고마움 그 이상이었다. 아들과 동갑인 26살이라는 그 청년의 반갑게 맞아주는 미소에는 으레 관광객을 향해 보여주는 형식적인 것 이상의 애정이 묻어났다. 그 청년 덕에 아브라함이 태어난 동굴과 아브라함의 연못 등 유적지들을 쉽게 돌아볼 수 있었다.

며칠 전에는 배낭을 멘 채 도시를 걷다가 해가 저물어 길을 잃었다. 택시조차 보이지 않고 간간이 다니는 버스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히잡을 두른 젊은 여인이 다가왔다. 아내를 포함한 3명 분의 버스비를 내주고 호텔이 많은 시내까지 우리를 안내해줬다. 일일이 우리들이 마음에 드는 호텔을 선택할 때까지 같이 기다려주었다. 간호사로서 야간 교대근무하러 가다가 길을 헤매던 우리를 만났던 것이다. 터키인들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따스한 마음을 똑같이 나눠 가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엊그제는 호텔에서 나와 도시를 걷고 있었다. 자그마한 가게 앞에서 물 한 병씩을 사서 마시고 있는데 중년의 신사가 다가왔다. 자신의 승용차로 제법 멀리 떨어진 큰 공원에 데려다준 그는 퇴근 후 우리들을 또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공원을 산책하고, 케밥으로 점심도 때우고 터키 어린이들과 사진도 함께 찍으며 그를 기다렸다. 약속시간인 6시에 공원 앞에 나타났다. 집으로 우리 가족들을 데려갔다. 1남3녀를 둔 단란한 가정이다. 한국의 빌라와 비슷한 건물 4층에 자리 잡은 집은 아담하고 소박했지만 부인의 손길이 구석구석 느껴졌다. 손님접대를 위해 분주해지는 가족들의 손길을 보면서 마치 한국에 와있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한국전 참전 용사라는 사실이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할아버지를 만나러 간다기에 우리 가족들은 따라나섰다. 왕년의 기자(?)정신이 아직도 몸에 배어서였을까?

'하크 큐축'이라는 84세의 할아버지였다. 우리를 보자마자 '부산 진천 서울'을 또렷하게 발음했다. 자신이 싸웠던 도시들을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6·25 전쟁 당시 1만5천명의 터키 참전 지상군 중 한 명이던 큐축 할아버지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이 보내준 '평화의 사도' 증서와 훈장을 내보이며 자랑스럽게 우리를 맞았다. 산르우르파 주에서 참전용사는 할아버지를 포함해 4명이 남았단다. 얼마 전 추첨을 통해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탈락해서 아쉬웠는데 우리를 만나서 너무 기쁘다고 했다. 한국전에서 이들은 '우스크다라'라는 터키 민요를 부르며 향수를 달랬다. 터키는 한국전에서 전사자 721명, 부상자 2천493명, 실종 175명, 포로 234명 등 총 3천623명에 이르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대한민국과 자유를 위해 흘린 피다.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할 때 함께 품었던 돌궐족, 고구려와 연합해 당나라를 물리쳤던 돌궐족, 6·25 참전, 2002 월드컵. 이렇게 해서 투르크(돌궐)족과 우리는 형제라고 한다. 큐축 할아버지께 아들과 같이 큰절을 올렸다. 수원에도 앙카라 공원을 만들었다고 말해줬다. 눈물을 글썽거리셨다. 4명의 아들도 아버지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했다. 이번 터키여행 중 6·25 참전용사 할아버지를 현지에서 우연히 만난 것은 여행 이상의 더 값진 것이었다.

/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교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