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이번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사고조사 내용 브리핑에서 사고 직후 승객 탈출이 90초 이내에 이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조사가 필요하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당국과 언론이 사고 원인을 조종사 과실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비상탈출 지연도 조종사의 늑장대응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여서 우려를 낳고 있다.
NTSB 데버러 허스먼 위원장은 10일(현지시간) 현지 기자회견을 통해 승무원 등을 조사한 결과 "꼬리 부분이 잘려나간 동체가 활주로를 벗어나 360도 회전한 뒤 멈춰서고도 기장은 관제탑과 교신하느라 승객들을 자리에 그대로 앉혀놓으라고 승무원에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NTSB측은 또 항공기 비상사태 때 90초 이내에 승객 전원을 탈출시켜야 하지만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첫 번째 탈출용 슬라이딩도 내려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미 당국에 따르면 약 90초가 지난 뒤 2번 탑승구에 있던 승무원이 동체 외부 중간쯤에 치솟는 불길을 창문을 통해 목격하고 이를 조종실에 보고된 뒤에야 탈출이 시작됐다.
NTSB의 브리핑대로라면 아시아나 사고기의 기장이 대피 지시를 빨리 내리지 않아 탈출이 늦어졌다는 얘기가 된다.
항공 전문가들에 따르면 항공사의 모든 승무원들은 비상상황에서 비행기 화재 등을 감안해 90초 이내에 승객들을 모두 대피시키도록 훈련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장의 초기 판단착오 가능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황사식 항공대 교수는 "비상상황에서 기장이 즉각 대피 지시를 내리지 않고 대기하라고 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조종사와 승무원 진술에 의해 확인된 것이라면 뭔가 전달이 잘못됐을 수도 있고, 실제 녹음기록장치(CVR)에 그런 말이 확인됐다면 조종사가 실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교수는 "기장이 사고후 관제탑과의 교신을 통해 위급사항을 알리고 구급차와 인력, 소방차 등을 요청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피지시가 좀 늦어진 측면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장이 승객 탈출지시를 내린 것이 90초가 지났다는 이유로 앞뒤 정황없이 잘못했다고 말할 순 없다는 지적이다. 기장이 심각한 위급상황이 아닐 경우 구급차 등 대피수단과 지원인력이 도착한 뒤 탈출을 시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우종 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항행위원은 "어디든, 어떠한 상황에서든 비행기 사고와 관련된 모든 책임은 기장에게 있다"며 "(기장 판단으로) 화재가 난 긴급 상황은 아니어서 승객들을 우선 안정시키고 활주로 등 대피가능한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늦어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허스먼 위원장도 이에 대해 "조종사들이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앞선 사례에서 탑승객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차량들이 도착할 때까지 탈출 작전을 시작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기장들은 비행기 앞쪽에 있기 때문에 승무원들로부터 보고를 받을 때까지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미국 발표에서도 승객 탈출이 지연됐다는 표현은 없었다"며 "아시아나측의 승객 대피는 신속하게 적절하게 이뤄졌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이는 자칫 기장의 늑장대응으로 번질 경우 승무원들의 희생과 빠른 사고처리 대응능력이 빛이 바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아시아나 사고기의 승무원들은 비상탈출을 순조롭게 진행하면서 침착하고 용감한 행동으로 대규모 인명피해를 막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며 현지 언론과 LA 시장 등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아시아나항공측은 "비상상황에 만들어진 매뉴얼이 있고,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그에 따라 승객을 대피시켰을 것"이라며 "기장이 기체 화재여부 등을 여러 상황을 판단해 대피 지시를 내렸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