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어보의 존재가 밝혀진 것은 2010년 여름이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미국지역에 있는 한국문화재의 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LA 주립박물관이 문정왕후 어보를 소장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정부는 6·25를 전후한 시점에 유출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확실한 입장은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직접 미국 메릴랜드의 국가기록원을 방문, '아델리아 홀 레코드'라고 불리는 문서 전문을 입수하게 되었다. 미국 국무부 관련 '아델리아 홀'여사가 작성한 이 문서는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흘러들어온 불법 문화재를 조사하고, 원산국으로 문화재를 반환한 경위를 작성한 문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에 6·25전쟁 당시 한국에서 문화재를 약탈한 미군범죄에 대한 조사 보고서와 반환 경위에 대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었다.
아델리아 홀 레코드의 마이크로필름 4 :774에는 '한국의 도장(Korean official seals)'이란 파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열어 보니 1956년 5월 21일 아델리아 홀이 당시 양유찬 주미 한국 대사와 전화로 나눈 통화내용이 있었다. 47개의 조선왕실 어보가 미군에 도난당했다고, 미국 정부에 분실사실을 신고하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한국의 보물이 사라졌다'는 제목의 1953년 11월 17일 볼티모어 선이란 신문기사도 수록되어 있었다. 이 기사에 의하면, 양유찬 주미대사는 47개 조선왕실의 도장이 미군에 의해 도난당했고, 행방을 아는 사람은 주미대사관으로 신고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귀국 후 나는 LA 주립박물관 소장 문정왕후 어보를 되찾기 위해 수차례 LA 주립박물관에 반환요청서를 보내왔다. 문정왕후 어보는 6·25 전쟁중 미군이 약탈한 문화재인 만큼, 원산국으로 돌려주기 바란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LA 주립박물관은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그저 그렇게 세월이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기같은 희망없는 막연한 싸움이었다.
2013년 1월 나는 다시 미국에 갔다. 거기서 교포들과 문정왕후 어보를 되찾기 위한 모임을 결성했고, 교포들과 함께 LA주립박물관에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한국측에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국내에서도 안민석(민주당) 의원이 국회에 'LA소장 문정왕후 어보 반환 촉구 결의안'을 제출하는 등 정치권의 호응도 있었고, KBS가 6·25전쟁 당시 미군이 약탈한 문화재들에 주목, '미국에서 찾은 국보(國寶)'란 다큐를 방영하기도 했다.
결국 LA주립박물관도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2013년 6월 LA 주립박물관측은 반환요청에 대해 " 아직 한국정부로부터 문정왕후 어보가 도난품이란 어떤 지적도 없었다. 만약 문정왕후 어보가 도난품이 확실하다면 관련된 증거를 제출해 달라"고 답신했다. 그리고 우리측의 면담 요청을 수락, 반환협상의 테이블이 마련되게 되었다.
지극한 정성은 하늘도 움직인다고 했던가! 7월 27일로 다가온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비록 민간차원이지만 그 당시 약탈된 문화재 반환협상이 시작된다. 문정왕후 어보는 다시 우리 민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가슴이 뛴다. 혼이 담긴 계란은 바위를 깬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혜문 문화재 제자리찾기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