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일 충실할때 가장 아름답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재능이나 개성만으론 안되고
성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서둘지말고 지혜롭게 기다려야
아시아나 항공기 승무원들의 영웅적 자세에 대한 보도는 우리를 안도하게 하고 기쁘게 한다. 그들은 물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지금도 고통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책임을 다했다는 생각에 떳떳하고 편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일순간 몸을 피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더라면 쏟아지는 비난과 함께 얼마나 자괴감에 시달릴 것인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많다. 음악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운동이나 독서도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공부할 수 있어 늘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우리는 행복하다. 더구나 해야 할 일을 다 했을 때 더욱 보람을 느낀다. 정치가, 기업인, 교육자, 성직자 등은 물론 부모는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고 학생이나 자녀가 자기 할 일을 충실히 실천할 때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할까.
재능(氣)과 성찰을 통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먼저 재능, 즉 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뿔 있는 짐승은 윗니가 없고, 꽃이 좋으면 열매가 시원찮다. '천불여이물(天不與二物)'이라 하여 하늘이 두 가지를 주지 않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씩 재능이 있음을 의미한다. 미인박명 · 미인박덕이라 하여 얼굴이 예쁘면 단명하거나 덕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똑똑한 자들은 참을성이 부족하고 교활해지기 쉽다고도 한다. 이를 깊이 깨달아 자신이 지닌 재능이나 기량을 계발하지 않은 채 남을 따라가고 닮으려 노력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너는 왜 누구처럼 못하느냐?'라는 뜻을 지닌 '엄친아'라는 말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자신의 개성을 찾지 못하고 남과 같은 꿈만 꾸어야 한다는 말인가.
'장자'에 동시효빈(東施效嚬)이라는 고사가 나온다. 춘추시대 월나라에 서시(西施)라는 미인이 있었다. 가슴 병을 앓은 그녀는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손으로 가슴을 지긋이 누른 채 미간을 찡그리는 모습으로 거리를 오갔다. 당시 같은 마을에 동시(東施)라는 추녀가 살고 있었다. 서시의 이런 모습을 본 그녀는 자신도 그렇게 하면 아름답게 보일 것으로 생각해 이내 가슴을 문지르며 미간을 찡그린 채 거리를 쏘다녔다는 내용이다. 남을 흉내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뒷받침하는 사례이다. 다름의 가치는 창조적 삶을 위해 필수적이다. 전체 속에서 개성을 중시하는 것이 민주적인 조화다. 결혼하여 이루는 부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상적인 부부는 서로 달라야 한다. 남편은 아내를 만나 성숙하고 아내는 남편을 만나 성숙함으로써 각자 서로가 단단해져야 한다. '부부가 똑같다'라고 하는 말은 칭찬일 경우도 많지만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행복을 위한 삶이 재능이나 개성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성찰의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시간은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를 선물하니 참으로 다행이다. 나는 나이 먹는 걸 감사하게 여길 때가 많다. 젊은 시절을 회상해보면 부끄러움이 크기 때문이다. 서양속담에도 나이는 곧 지혜라고 한다. 나이 40을 불혹이라 하는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이 형성되는 시기, 즉 갈팡질팡하지 않는 나이가 40이라 한다. 원대한 이상을 추구하려면 냉엄한 현실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공자는 회갑에 철든다고도 했다. 큰 그릇이 될 수 있다면 조급함을 버리고 지혜롭게 기다려야 할 것이다.
옛 서당에서는 놀이를 하면서도 인성과 연계시켰다. 이를 테면 아이 셋이 놀고 있는데, 아저씨가 떡 네 개를 주면서 똑같이 나눠 먹으라 하고 떠났다. 어떻게 나눠 먹어야 하는가가 문제다. 하나씩 나눠 갖고 남은 하나까지 삼등분해서 나눠 먹으면 된다. 하지만 훈장은 그 대답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들판에는 작은 돌부처가 서 있기 마련인데 곁에 있는 그 보살과 넷이서 하나씩 나눠 먹는다는 것이 정답이란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남을 배려하고 공적 책임을 다하는 정신이 우리의 몸속에 배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각고의 노력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우리 모두 영웅이 되고 행복할 수 있다.
/이화형 경희대 중앙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