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슬옹 세종대 겸임교수
세종대왕이 이룬 위대한 문자혁명
사람끼리 소통하자는 '소박한 꿈'
국정원 사태 민주주의 근본 위협
진실 가로막는 잘못된 역사 기록
일본의 독도 왜곡과 다를바 없어
아이들에 무엇을 가르칠 것 인가?


광화문 근처에 연구실이 있어 광화문 광장을 자주 찾는다. 요즘은 한 손에 책을 들고 서 있는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서면 눈물이 흐른다. 양심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똑같은 심정이겠지만 국가정보원 댓글 개입 문제에 대해 한글학자로서 더욱 걱정스런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편리한 한글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더욱 무서운 것은 고등학생까지 나서서 시국선언까지 했지만 댓글 사건이 언제 일어났느냐는듯이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세종대왕 앞에 이렇게 나직이 소리쳐 본다.

"대왕이시여. 당신이 만든 세계에서 가장 쉽다는 한글, 소통을 위해 만들었다는 편리한 한글이 소통은 커녕 오히려 국민을 분열시키고 민주주의의 근본을 뒤흔드는 도구로 사용되었나이다. 어찌 하오리까?"

물론 모든 언어는 양면성이 있는 것이니 어찌 한글이 악한 도구로 쓰였다고 한글과 한글을 만든 세종을 탓할 것인가? 한글은 디지털 시대의 욕망의 해방구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댓글을 달 수 있는 여건을 한글이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생들조차도 자유롭게 참여하는 댓글 문화가 열렸다. 그만큼 악플(악한 댓글)로 인한 부작용도 심심찮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제 댓글은 나이와 학력과 계층을 넘어선 국민 대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익명성에 힘입어 의사 소통의 주된 디지털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다른 언어권보다도 더 빨리 그런 문화가 자리 잡힌 것은 디지털 공간에서 잘 어울리는 한글의 힘일 것이다. 그러한 한글이 온 국민의 눈과 귀를 어둡게 만드는 거짓 문화의 중심에 놓여 있지 않은가?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동기와 목표가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었다. 소통하고 싶어도 어려운 한자, 한문때문에 그럴 수 없었던 근본 모순을 극복하게 해 주었다. 세종은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가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어울림의 문자를 만들었다. 사람끼리 소통하자는 것, 타고난 신분에 관계없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자는 것, 얼마나 소박한 꿈인가. 그 소박한 꿈이 인류 문화사에 위대한 문자 혁명을 이뤄냈다. 모든 소통의 근원인 책을 사랑했기에, 언어를 통한 역사와의 대화를 지극히 좋아했기에 그런 반대를 물리치고 하루 아침에 기본 소통이 가능한 문자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거대한 혁명이 디지털 소통 혁명으로 이어져 우리가 얼마나 기뻐했던가. 그런데 첩보 영화에서나 봄직한, 나라를 위해서 음지에서 묵묵히 일해야 할 사람들이 한글로 소통이 아니라 불신과 진실의 역사를 뒤집는 일을 한 것은 늦더라도 꼭 바로잡아야 할 문제이다.

댓글은 역사 기록이다. 그러므로 국정원 거짓 댓글은 분명한 역사왜곡이다. 역사라는 것이 거창한 사건 기록만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은 아니다. 일상생활의 모든 행위가 사건이 되고 의미가 부여되면 모두 역사가 된다. 역사 기록 중에 가장 나쁜 것은 사실과 진실인 양 겉으로 위장하는 역사 기록이다. 나쁜 의도가 겉으로 드러나면 정당한 절차를 거쳐 비판해서 바로잡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위장된 역사는 무엇이 진실인지 접근조차 가로막기 때문에 위험하다.

우리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분노하면서 정작 우리 스스로 하는 역사 왜곡에는 관대하다. 이래서는 역사의 진실을 찾을 수 없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 잔혹한 것은 수많은 사료들을 자기들 입맛대로 조작했고 지금도 독도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행위와 국정원의 행위가 다를 바가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지 않은가? 일본은 역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는 아베 총리가 다시 집권했다. 일본의 양심 세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국정원의 역사 왜곡에 침묵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소통을 얘기하고 역사의 진실을 가르칠 것인가? 많은 이들이 침묵하는 것도 국정원 댓글보다 나쁠 수 있다. 무플이 악플보다 더 나쁘다는 얘기가 있다. 분명 악플이 나쁘겠지만 무플은 그 악플의 뿌리가 되고 거름이 될 수 있으니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김슬옹 세종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