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못된다./잡초나 늪 속에서 나쁜 꿈을 꾸는/어둠의 자손, 암시에 걸린 육신.//어머니 나는 어둠이에요./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풀섶에서 일어난 어느 아침부터/긴 몸뚱어리의 슬픔이예요.//밝은 거리에서 아이들은/새처럼 지저귀며/꽃처럼 피어나며/햇빛 속에 저 눈부신 天性의 사람들/저이들이 마시는 순순한 술은/갈라진 이 혀 끝에는 맞지 않는구나./잡초나 늪 속에 온 몸을 사려감고/내 슬픔의 毒이 전신에 발효하길 기다릴 뿐/ 뱃속의 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구하듯/하늘 향해 몰래몰래 울면서/나는 태양에의 사악한 꿈을 꾸고 있다. ―최승자(1952~) '자화상'(1981) 전문
시에서 몸은 제2의 상징 언어다. 몸은 존재를 식별하게 해 주는 성스러운 장소이면서 상스러운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몸에 대한 비의적인 인식에의 출발은 "어둠의 자손, 암시에 걸린 육신"으로서 비극적인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 시의 화자는 "긴 몸뚱어리의 슬픔이예요."라고 자신의 몸을 뱀으로 대체한다. 뱀은 신화적 상상력으로 다의성을 가지는데, 허물 벗는 뱀을 동양에서는 남근과 관련지어 생명과 부활을, 무속에서는 영적 재생과 육체적 재생을, 기독교에서는 타락을 상징한다. 화자의 몸은 "새처럼 지저귀며/ 꽃처럼 피어나며/햇빛 속에 저 눈부신 天性의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한다.
그것은 타락한 존재로서 세계와는 "갈라진 이 혀 끝에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천형처럼 "잡초나 늪 속에 온 몸을 사려감고" 살아야만 되는 결여된 자의식에 대한 철저한 부정의식을 보인다. "내 슬픔의 毒이 전신에 발효하길 기다릴 뿐"이라고 자신의 몸에 스스로 만든 '독'이 퍼져가기를 갈망한다. 여기서 '독'은 다음 연에서 '아이'로 발효된다. 마치 어머니 뱃속의 아이가 '독'을 품고 "사악한 꿈을 꾸고" 출생했다는 상스러운 비애, 그것은 이중적인 존재의 '상징적 언어'다.
/권성훈(시인·고려대 연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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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2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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