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옥선·강일출 할머니
15살 나이에 강제로 끌려가
하루 하루 지옥… 죽을 생각
국가가 위안부문제 서둘러야
14일 오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 한적한 마당에 세워져 있는 소녀상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앞에는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먼저 타계한 할머니들의 흉상이 쓸쓸히 세워져 있었다.
이곳엔 위안부 할머니 10명이 생활 중이다.
이옥선(87) 할머니는 "우리는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잠시 눈 감고 잠을 자는 것이라고 믿는다"며 "일본 정부가 정식 사과하고 배상한다고 하면 지금이라도 눈을 뜨고 다시 일어나 엄청 기뻐할 것"이라고 아픈 가슴을 달래듯 말했다.
1927년 부산시 중구 보수동에서 태어난 그는 15세 나이에 일본군의 손에 끌려 옌볜의 한 비행장에 도착했다.
아무도 도망갈 수 없도록 전기가 흐르는 철망이 설치된 비행장에선 모국에서 끌려온 한국인 수백명과 함께 활주로 청소일을 해야 했다.
한창 성장할 나이여서 늘 배고픔에 시달렸지만 끼니는 하루에 1개씩 배급되는 밀가루 찐빵이 전부였다.
할머니는 지옥과 같았던 생활에 지쳐 일본군에게 집에 보내달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이들이 고향으로 보내주겠다며 할머니를 데려간 곳은 다름 아닌 위안소였다.
이 할머니는 "그곳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컸다. 하루 하루가 지옥 같아 매일 죽을 생각만 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강일출(87) 할머니 역시 1943년 15살의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가 참혹한 시간을 보냈다.
부농 집안의 12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강 할머니는 당시 아무도 없는 집에 갑자기 들이닥친 일본 순사에 의해 강제로 중국 창춘에 보내졌다.
이곳에선 일본군의 말을 듣지 않으면 마구잡이로 폭력이 이어졌다.
당시 생긴 상처는 강 할머니의 머리카락 사이로 아직까지 또렷이 남아있다. 그는 "아직도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을 떠올리면 분노가 끓어오른다"고 했다.
한편 나눔의 집 관계자는 "할머니들께서 몸이 편찮으신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해외로 나가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할머니들이 여생을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사실 수 있도록 양 국가가 위안부 문제를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