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에 마른장마에 이어 가뭄이 지속되는 가운데 바싹 마른 서귀포시 대정읍 무 경작지에 농민이 물을 주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지역이 기상관측 이래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는 등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가뭄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특히 제주지역은 계속된 가뭄에 이미 한라산 백록담과 계곡, 저수지가 대부분 바닥을 보이며 말라버려 식수를 비롯해 감귤 등 주요 농작물 생육에 비상이 걸렸다.

제주지역은 7월 제주 14.7㎜, 서귀포 18.8㎜ 등 평년의 6% 수준밖에 비가 내리지 않아 7월 강수량 기록으로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8월에도 10㎜안팎의 유례없이 적은 비가 내렸다.

지난해 8월에는 태풍이 3개나 내습해 한라산에는 2천㎜의 기록적인 강수량을 나타냈고 서귀포도 관측 사상 최고치인 926.7㎜에 이르는 강수량과 비교하면 올해는 최악이다.

이 때문에 어승생 저수지의 유일한 수원인 한라산 와이(Y)계곡(해발 1천200m) 물은 거의 말라버렸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물이 가득 찼던 어승생 제1저수지는 저수용량(10만7천t)의 절반인 5만2천t 정도밖에 차 있지 않다.

제2저수지는 이미 거의 말라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 한라산 백록담도 바싹 말랐다.

이에 따라 어승생 급수 지역인 중산간 지역 11개 마을(2천800여가구, 8천600명)에서는 지난 6일부터 격일제 급수가 시행되고 있다.

가뭄이 지속되면 2일 단수, 1일 급수 체제로 전환될 수도 있다.

서귀포시 해안 지역도 농업용수 사용 증가 등의 이유로 정수장 수위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물 공급이 일시 중단되는 등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가뭄 피해에 농심도 타들어 가고 있다.

7월 말∼8월 초 파종한 당근은 폭염과 가뭄에 싹을 틔우질 못하고 있다.

일부 농민들은 "당근밭을 갈아엎고 다시 심어야 할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며 걱정하고 있다.

당근뿐만 아니라 콩, 참깨, 밭벼 등의 밭작물도 생기를 잃었다.

가뭄에 비교적 강한 감귤 역시 평년에 비해 크기가 작거나 잎이 마르고 낙과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8월 중순이 지나면 양배추와 브로콜리 등 월동채소를 파종해야 하지만 최근 가뭄 상황에서는 파종마저 어려워 올해 월동채소 작황에 큰 피해가 예상된다.

여름 관광 성수기를 맞아 손님맞이에 한창이던 숙박업소나 식당 역시 격일급수 조치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급한대로 물탱크에 물을 받아놨다 쓰고 있지만 손님이 많은 날이면 물탱크가 금세 동나버려 급하면 소방당국에 급수 지원까지 요청하고 있다.

애타게 비를 기다리며 '기우제' 봉행도 이어지고 있다.

17일 산지천변 수변공연장에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된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보존회원들이 가뭄 해소를 기원하는 굿을 지냈다.

▲ 마른장마에 이어 가뭄이 지속되는 한라산 Y계곡(해발 1천200m)의 지난 8일 모습. 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나 있다. /연합뉴스=제주도 수자원본부

제주시 산천단에서는 14일에는 제주농업인단체협의회가, 10일 민주당 제주도당과 4대 종단 지도자들이, 지난달 31일 제주도의회가 기우제를 지냈다.

제주도는 현재 가뭄 피해가 확산하고 있는 당근 주산지 동부지역(구좌·성산·표선)에 현지 가뭄대책 상황실을 설치·운영중이다.

우근민 제주지사는 이들 가뭄 현장을 방문해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관계공무원들은 현장을 점검하며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제주도 가뭄 피해지역에 양수기 등 급수장비 구입비로 10억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광주·전남지역의 경우 고흥과 진도 등 일부지역의 대파와 참깨 등이 가뭄 영향을 받고 있다.

이들 지역은 50%대 안팎의 낮은 저수율에다가 지난해보다 강수량이 적어 계속 비소식이 없으면 밭작물 피해가 크게 우려된다.

신안을 비롯한 일부 섬지역은 여름철 고질적인 식수난에 가뭄 때문에 식수 공급에 차질이 생기자 생수 등 비상 급수를 공급받고 있다.

농어촌공사 전남지역본부는 "다음 주 이후에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가뭄 피해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산지역도 8월 현재 강수량이 2㎜에 그치면서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비닐하우스가 많은 강서구 대저동 일대 밭은 바짝 말라 갈라지기 일쑤이고, 간간이 보이는 상추와 깻잎 같은 채소들은 햇볕에 시들었다.

인근 양수장에서 물을 공급하고 있지만 해갈에는 역부족이다.

도심에는 가로수와 중앙분리 화단, 쌈지공원, 교차로 녹지 등의 수목에 살수차를 동원, 물을 주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부산시는 지난달부터 최근 3년 이내 심은 2천여 곳 6천500그루의 수목에 대한 급수관리 대책에 나섰지만 고사를 막지 못하고 있다.

울산시도 이달들어 평균 3.8㎜에 그친 강수량 때문에 식수원 댐인 회야댐, 사연댐, 대암댐의 저수율이 평년보다 10∼20%가량 줄자 가뭄 장기화에 대비하고 시민 식수원을 확보하기 위해 올들어 2번째 낙동강 원수를 공급받고 있다.

경북도도 평년보다 100㎜ 이상 적은 비에 저수지 평균 저수율이 전년 이맘때 73.4%에 비해 6.6% 떨어졌다.

경북도는 아직 밭작물이나 벼에 가뭄 피해는 없지만 다음 주말까지도 비가 없으면 고구마, 콩 등 밭작물 피해가 잇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지용주 농촌진흥청 재해대응과 팀장은 19일 "제주를 비롯한 일부 남부지역에 폭염과 더불어 가뭄 피해 상황을 계속 파악중"이라며 "지역별 기후, 토양성분 등의 차이에 따라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