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사태 전개에서 국가기록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기록물 관리 수준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특히 국가기록물을 정쟁의 재료로 사용하려는 의도는 우려스럽다. 이번 논란으로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제정한 취지가 크게 훼손되었으며, 이번 대화록 공개로 대통령들은 가급적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기록물 관리 차원에서 보면 커다란 손실이다. 여야는 정파적 관점에서 물러나 국가기록물을 역사의 '귀감(龜鑑)'으로 삼으려 했던 본연의 취지를 되돌아보고 제도에 문제점이 있다면 보완해야 할 것이다.
지방의 기록물 관리도 풀어야 할 과제이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현재까지 지방자치단체의 기록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기록보존소는 물론 관리를 위한 기구나 예산, 전문인력도 배치되지 않고 있다. 지방의 기록관리는 증명서 발급에 필요한 근거문서뿐이다. 공공기관이 생산한 문서의 대부분은 보존기간이 지나면 대부분 폐기되고 일부 영구보존문서만 정부기록보존소로 이관된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20년이 되어가는데도 아직 기록의 지방자치화는 요원하다. 지방 자신의 기억을 중앙(정부)에 맡겨 두고 있는 셈이다. 지방 아카이브는 우리가 만들고 있는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박물관이자 언제든지 열어볼 수 있는 타임캡슐이라 할 수 있다. 지방을 운영하면서 생산된 행정기록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 시민생활 기록물들이 체계적으로 수집, 분류, 보관된다면 행정업무의 효율화와 투명화, 그리고 시민들의 지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지방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사실 지방기록물 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2007년에 개정하면서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에 전국 16개 광역시도는 시·도 기록물관리기관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기본계획을 수립할 것을 명시하였다. 지방기록물관리기관 설치와 운영에 필요한 경비 일부를 국가가 보조할 수 있다는 재정지원 근거도 명문화되어 있으며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을 배치하라는 추진 일정도 명시되어 있다. 지방기록보존소 설립 논의는 법 제정까지만 이뤄지다가 법 제정 이후 실종되고 만 것이다. 기록물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인식이나 의지부족이 한 요인이지만 재원부족을 내세워 지방정부의 계획을 반려한 중앙정부의 탓이 크다. 잠들어 있던 이 법을 깨운 것은 서울시이다. 박원순 시장이 열린 시정을 위한 주요 사업 중의 하나로 전국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기록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총예산 1천억원 중 500억원의 국비지원을 받는 문제로 정부와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아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기록 관리를 철저히 하게 되면 투명하고 책임있는 행정이 가능하다. 누구나 지방행정과 관련되는 기록을 열람할 수 있고, 그 기록을 토대로 연구자는 더 현실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진정한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는 첩경이다. 기록물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관리하지 않고서는 선진사회로 도달하기는 어렵다는 점은 최근의 대통령기록물 논란에서도 확인되었다. 지방 기록문화유산과 지방정부가 생산되고 있는 기록들을 과학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기록보존소 설립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이다. 정부는 법 제정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지방정부의 기록물관리기관 설립 요청에 적극적 지원으로 화답해야 할 것이다.
/김창수 객원논설위원,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