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평론가
국정원 국정조사 끝났지만
여야갈등 수그러들지 않아
집권당은 야당에게 퇴로를
열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대통령은 경제나 민생만 챙기는
자리가 아니기에 직접 나서야


정부 출범 후 6개월이 임기 전체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집권 초반의 국정 드라이브는 중요하다. 취임 6개월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는 50% 후반에서 60%대의 안정된 지지세를 보인다. 노무현, 이명박 등 전임 대통령들이 취임 초기 높은 지지도를 보이다가 하락하는 경우와 대비된다. 방미 성과나 방중에서 나타난 외교적 결실, 대북 관계에서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기반한 안정감 있고, 일관된 정책은 남북관계에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줬다. 이러한 대외적 성과와는 달리 내치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 의지와 원전 비리 수사 등을 제외하고 임기 초반 이렇다 할 성과를 발견하기 어렵다. 정부 출범 직후 정부조직법 통과의 지연과 인사파동은 하나의 현상이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과 인식의 전환이 긴요하다. 일방적인 지시에 기반한 정책은 토론과 건의를 실종시킨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은 그래서 만기친람(萬機親覽)형 리더십이다.

권한과 책임을 분담하는 참모의 부재는 효율적인 국정 운영에는 저해 요소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김종훈 미래부 장관 후보자 등이 연이어 낙마한 인사파동 이후 야당 지도부를 청와대에 초청해 '야당과의 국정동반자 관계 설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소통을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야당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당청 관계의 유기적 작동도 소원해 보인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와의 정례 회동도 제도화 되어 있지 않은 것이 그 방증이다. 정국수습을 위한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양자회담 제안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3자회담 방식도 거부했다. 대선 후보 시절의 공약 사항이었던 국가지도자 연석회의는 실현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국회를 민생과는 무관한 소모적 정쟁의 장으로 폄하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감동을 수반하지 못한다. 국민의 자발적 동의와 설득이 요원한 곳에서 통합이 들어설 공간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갈등을 외면하고 갈등의 관리와 조정을 위한 토론도 정쟁이라고 보는 인식 속에서 민주주의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권위주의는 민생을 '먹고 사는' 문제에 국한시키고, 국민들의 즉자적 경제 생활에만 1차적 의미를 부여하는 사고구조의 틀에 친근했던 산업화 시대의 수직적이고, 시혜적인 리더십과 맞닿아 있다. 권위주의와 '민생'의 왜곡된 조화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를 민생과 분리시키는 기현상을 잉태한다. 그리고 이는 국회의 왜소화, 정치의 부재, 여야 정당의 경시와 친화력을 갖는다.

민생과 정치는 별개가 아니다. 정치는 정쟁적이라는 사고와, 정치는 소모적이고 낭비적이라는 인식속에서 민주주의가 성숙할 토양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삶 그 자체인 민생은 시민사회의 갈등과 균열을 조직화 해내고, 이를 관리, 조정, 타협 시키는 정치라는 장을 거치지 않고는 제도화 될 수 없다. 구체적으로는 입법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정책 대안이라도 집행할 수가 없다. 비록 여야의 주요 정당이 카르텔 구조를 형성하고 있더라도 계층과 지역 대표성과 갈등 관리 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정당체제에서 정치의 기능을 폄하한다면 민생은 중장기적은 물론이고, 단기적으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없다.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과정이고, 국회의 입법 과정이기 때문이다.

국정원 국정조사가 끝났지만 여야의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재의 집권당의 정치력으로는 야당에게 퇴로를 열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청와대로서는 여야의 첨예한 정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도이겠으나, 대통령이란 직책은 경제나 민생만 챙기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은 정치 그 자체다. 정치의 중심이고, 정치는 일정부분 정쟁을 수반한다. 그리고 이를 조정해 내고, 관리하는 것이 정치다. 진정한 정치의 복원이 전제될 때 민생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정치와 민생은 별개가 아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