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원 가천길병원연구원장, 당뇨내분비센터장
수명과 질병을 결정하는건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유전자만으로 되는게 아니고
후천적인 생활습관 등이
유전자에 영향을 줘
결정된다고 할수도 있다


무병 장수의 꿈은 인류의 가장 큰 꿈 중의 하나이다. 의학연구비의 상당한 부분은 항노화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장수하는 지역과 나라에 대한 역학 연구를 통하여 100세 장수인의 특성을 발표하고 있다. 우선은 장수인이 생활하는 주위의 지리적 여건과 생활습관에 대한 특징에 대한 분석이다. 다음은 장수인의 혈액검사를 통하여 장수의 특징을 찾아보려는 노력이다. 이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장수인의 유전적 특징을 찾는 연구이다.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아직도 큰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의학연구는 노화 또는 질병이 생기는 원인을 찾아서 예방과 치료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질병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주장이 있었다. 그 논쟁을 정리하면 "건강과 장수는 타고 나는 것이냐, 아니면 자신의 삶의 방식에 의하여 결정되느냐"이다. 특정한 색깔을 구분 못하는 색맹, 출혈이 잘 멎지 않는 혈우병 등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표적인 유전질환이다. 이러한 유전질환은 자녀와 형제간에 발병될 확률을 비교적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당뇨병, 비만증, 고혈압 등도 가족들 사이에서 닮아가는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이외에도 가족간에 체형, 체질, 생리현상, 수명 등도 가까운 친척일수록 더욱 닮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과거에는 특정한 유전물질이 대를 이어서 전달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기본적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세포의 핵 안에 뭉쳐진 염색체는 하나의 '실'이 수없이 많은 겹으로 꼬이고 꼬인 실타래 뭉치이다. '실'의 구조를 다시 확대하면 두 가닥이 종으로 횡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각각의 가닥은 약간씩 모양이 다른 분자 조각으로, 이들이 일렬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염색체 '실'의 이중 가닥을 이루는 '분자 조각'을 DNA라고 한다. DNA가 수백 개 또는 수천 개가 연결되어 하나의 기능 단위를 만든다. 여러 개의 DNA가 연결된 기능단위를 '유전자'라고 칭한다.

하나의 염색체에는 보통 수천 개의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다. 유전자 하나 하나는 자신들의 고유한 단백질을 만들어 개개인 체질적 특징을 결정한다. 이러한 생물학적 특징 때문에 많은 생물학자와 의학자들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들을 모두 분석하는 대규모의 유전체 연구사업을 수행하였다. 현재는 마음만 먹으면 개인들의 전체 유전체 분석이 현실화된 단계이다. 그렇다면 유전체 분석을 통하여 개인들의 질병발현 양상과 수명을 예측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인가.

얼마 전에 한국과 미국에서 20년 가까이 입양으로 떨어져 살았던 일란성 쌍둥이의 이야기를 방송한 적이 있다. 일란성 쌍둥이는 모든 유전자의 구조가 동일하여 외모에서부터 행동 그리고 질병양상, 수명까지도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방송에 나타난 일란성 쌍둥이는 체형을 포함한 외형이 너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식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의외의 상황이었다. 대규모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흥미있는 연구결과가 있다. 만일 유전자가 생명현상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면, 수명과 질병현상도 동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쌍둥이 간에 질병들의 일치율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죽음의 원인이 되는 질환의 일치율은 더욱 낮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수명과 질병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생활습관 등이 유전자에 영향을 주어 결정된다고 할 수도 있다. 유전병으로 알려진 질환들은 대체로 하나의 유전자로 결정된다. 그러나 비만증, 당뇨병, 고혈압 등은 하나의 유전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10개 이상 때로는 100개 이상 유전자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한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생활습관에 의하여 유전자 구조에 변형이 생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출생 시의 유전자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운명적인 천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운명적이라고 여겨진 유전자의 발현양상이 고정불변인 것은 아니다. 후천적인 생활습관을 통하여, 유전자의 발현양상이 달라지고, 수명과 질병형태도 달라진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체질이지만, 후천적인 습관에 의하여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김광원 가천길병원연구원장, 당뇨내분비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