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냉이죽을 먹던 상처나
허기져 눈칫밥 안먹겠다던
외환위기 시절…
그 아이들의 아픔
더는 되풀이돼선 안된다
최근 경기도는 내년도 예산을 세우면서 무상급식 예산 860억원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했고 기다렸다는듯 인천시와 경상남도도 내년부터 무상급식을 확대하려던 계획은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 뒤이어 경상북도와 대구시도 무상급식 대상을 더는 늘리지 않겠다고 발표를 했는데 그 이유는 한결같이 세수 부족에 따른 살림살이 어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경제침체에 따른 세수 부족으로 예산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삭감 대상 1호가 급식 예산이어야 하는지는 다시 짚어봐야 할 것 같다.
60년대 중반 내 초등학교 시절에도 도시락은커녕 아침밥도 제대로 못먹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 급식으로 강냉이 죽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서는 당시 어린 눈으로 보기에 정말 커다란 가마솥에 장작이 소리를 내면서 타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던 누런 강냉이 죽이 설설 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철없던 나는 그 죽이 먹고 싶어서 안달을 부렸지만, 죽을 받아먹는 친구들은 우리들과 눈을 못 맞추고 슬금슬금 피해 고픈 배를 채우는 모습을 보였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40년이 더 지나 만난 한 동창은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속에 그 시절을 회상하며 고픈 배의 설움보다 쭈그리고 앉아 강냉이 죽을 먹을 때 친구들의 눈길이 그리 서러웠다고 털어놓았다.
외환위기 시절 당장의 경제 위기는 우리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 해체를 가져오고 많은 결식아동을 양산했다. 당시 지역 시민단체들은 결식아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식사 제공이나 바우처 제도 등 다양한 지원 방안을 마련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많은 아이들은 차라리 배를 곯을지언정 그 프로그램에 참여를 꺼려 이유를 물으니 '창피해서'라고 했다. 이 아이들의 창피해서라는 것은 '부끄럽다'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는 자기 존재를 흔드는 자존감의 문제이다. 밥을 앞에 놓고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이런 정책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 당시 당장 위기상황에서 수행했던 수많은 정책에 대한 평가 과정에서 결식아동 정책은 그리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단체는 학교급식만큼은 의무교육의 일환으로 부모의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추진해야한다는 지난한 주장을 해왔다. 경기도를 시작으로 실시되던 무상급식이 2011년 8월 오세훈 시장이 학교급식문제로 셀프 탄핵을 한 이후 겨우 정착되는듯했는데 경기도가 내년 예산을 삭감하면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정치란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일이다. 즉, 줄 수도 있고 늘 수도 있는 세입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보고 좀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후 발생될 문제를 최소화하고, 나를 뽑아준 주민의 의견을 반영해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줄여야하는 1순위가 아이들 밥그릇인가? 우리는 지난 몇 년 잘못된 자원 배분이 가져온 심각한 사회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많은 국민이 인구고령화와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대책을 요구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멀쩡한 강바닥을 파고 보를 설치하고 시멘트를 쳐 바르는데 22조원의 돈을 쏟아붓고, 시장과 결탁한 관료들은 수요조사를 부풀려 도로와 운하를 파는데 헤아릴 수 없는 돈을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무상급식과 관련해서만 말이 많다. 재벌 손자 밥값을 왜 국민이 내주어야하냐고, 세금 한 푼 안낸 사람의 자식 밥값을 아까운 세금으로 채워야하냐고 궁시렁댄다. 속내를 들여다보자. 일 년이면 수억원의 세금을 내는 사람의 손자에게 몇 푼의 밥값을 대주는 것이 무슨 대수인가, 어떤 사람은 세금 한 푼 안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조세제도를 잘 들여다보면 이 역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월 100여만원의 수입으로 4식구가 근근이 살아도 나도 모르게 나가는 세금(간접세)이 최소한 10여만원이니 세금 한푼 안내고 밥만 축낸다는 말도 안맞는 말이다.
최소한 아이들 밥그릇은 빼앗지말자. 초등학교 시절 숨어서 강냉이죽을 먹던 내 친구의 상처나, 허기져도 눈칫밥 안 먹겠다던 외환위기 시절 그 아이의 아픔을 더는 되풀이해서 안된다. 밥은 생명이고 평화다. 아이들이 맘 편히 밥 먹도록 해주자.
/한옥자 경기시민사회포럼 공동대표